125번 버스

125번 버스는 여전히 다니고 있다. 일부 구간에선…. 125번 버스는 이젠 다니지 않는다. 일부 구간에선….
담양 고서에 사는 사람들은 “버스가 아예 안온다”고 말할 테지만 지금도 `종젼인 연천 사람들은 “노선이 바뀌어도 버스는 잘 안온다”고 푸념할 것이다.
125번 버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버스 노선이 바뀔 때에도 폐지 노선은 아니었다. 다만 일부 노선이 바뀌었다고 한다. 공공안내문에 표기된 `일부’라는 말이 왠지 섭섭하다. 너무나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쓰인 표현은 오히려 주관적으로 읽힌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부라는 듯 ….
다섯달 만에 125번 버스를 `또’ 탔다. 발그레한 단풍을 보기 위함도 아니요, 담양 소쇄원에 가고자 한 것도 아니다.
계기는 전시회 때문이었다. 5·18자유공원에서 열린 비엔날레 `현장3전’에서 김수옥·김왕주 작가의 `125번 버스를 타고’ 전을 보고 난 뒤에 새삼 125번을 주목하게 됐다. `125번 버스를 타고’란 작품은 일상을 `재발견’하고 있었다. 광주와 담양을 잇는 125번 버스의 소소한 얘깃거리를 끄집어내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냈다.
무심히 지나쳐버린 일상, 너무나 익숙한 우리 모습을 기록한 전시회를 보다 문득 영화 〈스모크〉가 생각났다. 영화 〈스모크〉에서 담배가게 주인 오기랜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12년동안 꾸준히 찍는다. 그가 찍은 12년간의 기록에는 그리 `다를 바 없는’ 일상들의 시대기가 담겨 있다. 어느 누구만의 것이 아닌 `순간’을 기록한 사진 속에는 `스쳐 지나간’ 이들의 일부분이 정지되어 있다.
사진에 담긴 인물이 `특정인’일 수 있지만 누구나 자신을 그 속에 대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심코 흘려버린 순간들을 위해 다시 125번 버스로 택했다. 이번 버스여행에서 목적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졌다.
출·퇴근 시간을 지난 버스라 승객은 몇몇에 불과하다. 보자기에 차곡차곡 쟁인 짐을 발로 꼭 붙여놓고 단잠에 빠진 아주머니, 의자에 앉아 있어도 지팡이를 꼿꼿이 세운 어르신, 할머니의 품 안에서 칭얼대며 잠을 청하는 어린 손주녀석 등 대여섯명 정도 걸터앉은 버스에는 흘러간 노래들만 침묵을 깨고 있었다.
`대인광장―연천’을 돌던 버스는 이제 `장등동―연천’을 다닌다. 불과 20여 일 전만 해도 농산물공판장에서 장을 보곤 버스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용호―보촌 삼거리―고서삼거리―광주호’를 지나 연천에 도착했다. 지난 10일 이후부터 공판장 맞은편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말바우시장’과 `서방시장’을 지나 4수원지를 거쳐 종점에 다다른다.
전망대를 지나 4수원지에 이르는 길에 속도를 줄여가며 조심히 운전하는 연수 차량때문에 운전기사는 맘이 급하다. 두 대로 하루를 채우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배차시간에 맞춰야 한디 저렇게 가면 어떡하나”며 애만 태운다. 누군가에게는 잠시 `숨’을 돌리며 휴식을 취하는 길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일상의 통로인 것이다.
광주와 담양, 도심과 주변 지역, 재래시장과 백화점, 도시와 비(非)도시를 연결하던 `버스’는 이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산장을 거쳐 연천을 향한다. 이제 125번 버스를 `주로’ 이용하던 이들의 동선도 달라졌다. 버스에서 만난 40대 아주머니는 “예전에는 백화점이나 광주역 가려면 이거 한 대만 타도 됐는디 이제 갈아타야 되제. 뭐 카드를 대고 타면 공짜긴 해도 나이드신 분들이 그런 것을 잘 알겠능갚라며 달라진 버스 노선제를 타박한다. `편리할 것 같은’ 환승제도와 교통카드 시스템은 `적응기’를 거쳐야 `합리적’이 될 수 있다.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 이들의 동선일까. 도심과 부도심을 연결하는 `간선버스’와 연계하기 위해 일반 주거지역 위주로 편성된 125번은 집과 병원, 재래시장, 학교를 거쳐간다. 마을 밖을 나가 더 `넓은’ 곳을 나갔던 지난날의 버스는 어느새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일상적인 이동공간이 된다. 그러나 각 공간마다 버스가 머무는 대수도 다르다. 도시로만 진출하는 이들때문에 점차 공동화 현상이 있는 시 외곽 지역에 사는 이들의 불편함은 시대적 흐름으로 읽어야 할 것인가.
한 승객이 “고서쪽 사람들이야 군내버스라도 자주 댕긴게 아쉬운 대로 타면 되지만 우리야 사정은 빠듯해”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125번 버스 기사는 “군내버스가 우리보다 10분 더 일찍 출발하니까 막상 정류장에 도착하면 승객들이 별로 없다”며 “승객들 생각하면 버스가 적어도 세 대는 다녀야 하고, 자리가 비어 있으면 또 편치 않다”고 걱정한다.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운행노선
배차간격: 65분, 운행대수: 2대, 첫차 오전 6시10분 막차 밤 8시30분(장등동 방면)
장등동―도선사―도동고개―문흥지구 입구―농산물공판장―동광주진입로―광주병원―무등도서관―말바우시장―동신고―서방시장―교육대―풍향시장―두암타운 입구―산수오거리―장원초교―무등파크―전망대―4수원지―4수원지 위―화암―충장사―금곡―석제―수리―충효동―소쇄원―충의교육원 입구―반석―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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