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동 산수기원

바둑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마땅한 놀이문화가 없어 바둑에 취미를 붙이는 사람이 많았다. 아무리 바둑을 좋아해도 맞둘 사람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노릇, 그 고민을 풀어주는 곳이 기원이다.
80년대까지 바둑인구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광주 시내 곳곳에 기원들이 차려졌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간판을 바꿔 달았거나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기원을 찾지 않더라도 언제나 바둑을 둘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산수기원’은 70년대 문을 열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원 간판을 달고 있다. 건물은 그대로이지만 그 사이 주인장이 몇 차례 바뀌어 가게의 정확한 역사는 알 길이 없다.
“여가 하여간 겁나 오래됐제. 산수동 오거리에 요 건물 생기면서부터 지금까지 기원이었응께. 하여간 30년은 넘었는디 정확하게는 몰라. 모르긴 해도 광주바닥에 여기보다 오랜된 기원은 없을 것이여”라는 게 주인 이구영(50)씨의 말이다.
기원이 인기를 끌던 시절은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다. 지금은 30대 이하의 젊은 사람들이 일절 찾아오지 않지만 한때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가게 안에 하루 종일 20여 명은 들어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당시에는 젊은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마땅히 시간을 달랠 놀이가 없었다.
“지금이야 할 게 얼마나 많어. 혼자서도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별의별 것을 다 할 수 있는 세상인디. 근디 옛날에는 어디 그래. 젊은이들이나 기껏 당구장 기웃거리는 정도였제. 근께 기원에서 바둑두는 사람들이 많았제. 글고 지금은 전부 혼자 오는디 옛날에는 짝을 맞춰서 오는 사람이 훨씬 많았어.”
90년대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가게 꾸리는 데는 문제없었던 기원들이 대거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굳이 기원을 찾지 않아도 바둑을 쉽게 둘 수 있는 세상이다. 더구나 인터넷에서는 맞둘 사람의 실력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급수의 사람들이 다 모여있다 보니 접속만 하면 바로 대등한 실력자와 대국이 이루어진다.
“젊은 사람들이 요새 세상에 뭐하러 기원에 오겄어, 전부 PC방으로 직행하지. 그래도 바둑은 둘이 앙거서 둬야 제 맛이 나는 법이제. 근께 간간이 나이 자신 분들이 찾아오기는 하는디 하루에 네댓 명이 전부여.”
젊은 사람들의 수혈이 완전하게 끊기다 보니 산수기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단골이다. 10년을 훨씬 넘긴 단골도 많고, 최하가 5년 정도는 출입한 사람들이다. 주인 이씨도 기원 수입으로는 가게세 내기도 힘든 실정이지만 단골들 얼굴 보는 재미로 버티고 있다.
“요새 세상에 기원은 소일거리 수준도 안 되제. 그냥 있기도 뭐하고 단골들하고 바둑두는 재미로 가게문을 열어 놓고 사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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