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봉. 소나무 숲길이 끝나니 갈참나무 숲길이 곡선미를 자랑하듯 굽이치고 있다.
몰아쉬는 한숨 끝에 언덕길에 당도하니 아파트와 도로가 빼곡히 들어선 광주가 한눈에 보인다.
누가 이런 언덕에다 화려한 꽃밭을 만들었을까.
꽃밭에서 유독 눈에 띄는 애가 있다. 바로 각시, 각시, 내각시인 `꼬리박각시’이다.
워낙 날갯짓이 빠르고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면서 길다란 빨대로 꿀을 빨다보니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무척이나 애를 녹이더니 결국 제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를 보면 여자 입술에 뚱뚱하게 생긴 나방이 그려져 있다. 이 나방이 우리나라 종인 탈박각시의 아종이다.
박각시란 이름을 가진 종들은 국내에 5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몸은 뚱뚱하지만, 이름으로만 보면 “각시 각시 내각시”라는 어여쁜 느낌이 든다.
낮에 피는 여러가지 꽃들이 벌과 나비로 수분을 시키듯, 박꽃은 박각시나방이 수분을 시킨다.
힘찬 날갯짓과 긴 주둥이를 가지고 있어서 처음엔 벌새로 오인하는 박각시. 이 이름의 유래는 밤에 꽃잎이 벌어지는 박꽃을 찾아가 그 앞에서 윙윙대며 꿀을 빨고 있으니, 신랑인 박을 찾아온 각시라는 뜻이다.
서로 서로 경쟁자가 없는 저녁시간을 이용, 효율을 높여 결실을 맺고자 하는 의도로 만난 박꽃과 박각시나방은 그 나름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박각시를 `박나비’라 한다. 즉 박꽃에 오는 나비란 뜻이므로 남한에서 부르는 이름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이 나방이 매우 커서 나는 모습이 참새처럼 보여 참새 작(雀)자를 쓰고 있다.
영어 이름은 호크 모스(hawk moth). 호크는 매로서 힘있게 나는 이 나방의 모습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박각시나방의 유충은 위장눈이 달린 몸 앞면을 쳐들어 자신을 더 큰 곤충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하고, 꼬리쪽에 큰뿔이 나있어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더구나 박쥐의 초음파를 차단하는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박각시나방을 보노라면 곤충의 지혜는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진다.
김영선 <생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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