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골 장대하다. 키 180cm에 몸무게 77kg. 뭣이라도 겁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체격의 그 남자가 요즘 빠져 있는 것은 다름아닌 십자수!
“오매 요것이 마약이나 똑같애라. 한번 빠져들문 쉽게 끊을 수가 없당께라.”
`내 사랑 십자수!’를 외치는 한홍권(40·남구 주월동 `회사랑’ 주인)씨의 즐거운 하소연이다.
솥뚜껑같이 두툼한 손으로 작은 바늘을 붙들고 씨름을 한다. 식당 문을 삐그적 밀며 손님이 들어서도 쉽게 손길을 떼지 못한다.
`오매 요그까지만 허문 요 몬양이 완성될 판인디 왜 벌써 손님이 오신디야, 쪼깨만 더 있다 오실 것이제’ 하는 마음이 들어 바늘과 천을 밀어놓기가 못내 서운하단다.
어깨 떡 벌어진 장정이 십자수를 놓고 있는 품새를 아무렇지 않게 보아넘길 손님은 별로 없었을 터.
“지금 뭣허는 것이요”부터 시작해서 “오매오매 남자가 뭔일이다요” “고것이 고렇크롬 좋소” “아따 아자씨는 재미지게 사요”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진단다. 그래서 덕분에 한바탕 웃는 일도 많단다.
그가 십자수를 시작한 것은 한달여 전. 초등학생인 딸 송이(10)가 십자수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다 “오매 왜 그라고 느리냐. 아빠 하는 것잠 봐라” 하며 시범을 보이려 든 것이 시초. 큰소린 쳤는데 만만한 일이 아니더란다. 그런데 재미지더란다.
“시간과 정성을 바친 만큼 눈에 딱딱 성과가 보인께 얼매나 오진지. 흐컨 천이 색색으로 이삐게 메꿔져 가는 것이 참 묘한 성취감을 주드란말요. 흙탕물 맑아지대끼 오만 잡생각도 사라지고.”
그래서 운동 좋아하는 이 남자는 엉덩이 진득하니 붙이고 `십자수 놓는 남자’가 됐다.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귀찮거나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아니요, 전혀. 내가 좋아서 한디 누가 뭐라글랍디여.”
애당초 `남자일’ `여자일’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다. “요즘엔 남자들도 미용실 가서 손톱 소지도 하고 근답디다. 뭐 자기 맴에 앵기문 하는 것이지라.”
남들 눈에 갇혀서 `할 일’ `못할 일’을 딱 금그어 놓고선 `에헴’ 하고 살면 뭔 재미냐고 묻는 그다.

“첨에 당구 배울 때 잘라고 눕기만 하문 천장에 당구대가 아른거리더니 요즘엔 천장에 십자수 판이 떠억 펼쳐지요. 내가 눠서도 십자수를 놓고 있당께라.”

지금 만드는 것은 쿠션용. 이걸 마치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것들도 벌써 구상해 두었다. 다른 남자들에게도 권하고 싶을까. “남자라고 못헌다요? 다만 덜렁대고 성격 급한 사람은 못하겄습디다.”

그러고보니 그는 여러모로 남들의 눈길을 끌만 하다. 한 갈래로 질끈 묶은 꽁지머리도 그렇다.
“그냥 좋아서 길렀는디…. 사람들이 자꼬 물어보요, 뭣허는 사람이냐고. 그냥 웃으문 답도 자기들이 내려부요. `아자씨는 예술하는 사람겉으요’라고.”
`뭣을 해야만 머릴 기르나? 예술하는 사람만 머릴 길러야 하나?’가 그의 생각이다.
“허허, 근디 내가 요즘에는 예술도 해뻐리지 않소. 근디 요것(십자수)도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쳐줄랑가.”
머리 기를 때도 `넘들 눈치’는 안봤다. “요것이 이발비도 안들고 좋은 점이 많애라. 사람들이 `아, 그 머리 긴 남자’ 글고 딱 기억을 해분께 어디 가든 나쁜 짓 안헐라고 조심은 허제만.”
꽁지머리에 신발은 흰고무신. “오매 이야기허다본께 내가 별스런 사람같소. 한나도 별스럽도 안헌디. 요것도 그냥 핀허고 좋아서 신는 건디.”

 글=남신희 기자 miru@gjdream.com
사진=김태성 기자 hancut@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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