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노대동 분적산

노대동 일대는 효(孝)골로 불렸다. 예로부터 노인을 공경하고 오순도순 살았던 100여 가구의 양반 동네가 노대(老大)였다.
마을 이름으로 본다면 노인건강타운의 입지로는 그만한 곳이 없을 성 싶다.
분적산은 이 마을의 뒷산. 무등산의 아우라고 일컫는다고 하니 첫발을 들여놓기 전 심정은 `기대반 걱정반’이다.
“땔감 때던 시절에나 올라 다녔지. 지금 누가 드나들간디.”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그 산을 밟아본 것은 소시적.
`금방이면 오고 간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나절은 넘게 걸린다’는 축까지 종잡을 수 없는 코치가 중구난방 쏟아진다. 서로 목청까지 높아져 산행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 소동을 단번에 잠재운 이가 있었으니 윤용복(70) 할아버지.
“내가 어제 갔다 왔응께. 다들 아무 소리 마소.” 대체나 잠잠해졌다.
“내 말만 들어”라며 한참을 설명하던 윤 할아버지. 말로는 모자랐는지,종이를 달라더니 약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르신이 그려준 산행지도는 정상을 넘어 한 지점에서 끝나 있었다. 굴바우라고 했다.
분적산에 올랐으면 꼭 가봐야 한다는 곳. 엄청나게 큰 바위에 굴이 뚫려 있단다. 그 속엔 여름에도 이가 시려울 정도의 약수가 쉬지 않고 떨어진다고.
“깔끄막이 심해서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내가 일이 없었으면 같이 가줄 것인디….” 인정 넘치는 배웅을 뒤로 하고 산으로 들어섰다.
마을 뒤편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잘 정돈된 상태. 밑자락엔 최근에 조림한 것으로 보이는 편백나무 묘목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하지만 무성한 칡덩굴에 허리가 죄여, 고통이 심했다.
고난은 소나무에게도 찾아왔다. 최근 폭설의 후유증일 듯,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들이 절단나 널부러져 있었다.
한 두 그루가 아니라 군데군데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 솜털같은 눈의 괴력을 산에서도 한번 더 확인했다. 한참을 오르니 묘 3기가 올망졸망 모여 있다.
딱 그려준 대로다. 지도에 대한 신뢰도는 한층 업그레이드.
나뭇잎들이 쌓여 폭신폭신한 산책로. 솔잎이 참나무잎으로 돌변하는 중턱, 신갈나무 세상이다. `800m 이상 고지에서 자란다’는 나무다.
금당산 옥녀봉보다 100m는 더 높다는 분적산(405m)의 산세를 짐작케 하는 대목. 나주 쪽에서 도심으로 넘어 오는 찬공기의 방어막으로 견뎌내 온 세월이 짧지 않았음이다.
윤 할아버지의 지도대로 바윗돌도 보이고, “거기서 계속 올라갚라는 육성이 선명하여 망설임없이 전진한다. 삼거리다.
어르신이 지도에 정상이라고 표기했던 곳. “남구청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험상시러워서 못가.” 역시 윤 할아버지의 주문이었다. 반대로 걸어가면 묘 2기가 또 나타날 것이다.
의심치 않았다. 지도에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굴바우를 보게 되리라는 기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암벽 가파른 능선에 도달했다. 확신한 대로 묘가 2기. 계곡쪽에 자리한 마을은 일러준 대로 육판리(동구 지원동)가 확실할 터.
하지만 문제다. 길은 두 갈래. 내려서는 길은 하나같이 험하고 암벽이다. 마지막 설명을 귀담아 듣지 않았음이 후회막급이다.
종이가 부족해 마지막 부분이 불분명하게 그려진 것. 한귀퉁이 잘려 나간 보물지도처럼 오리무중. 두 갈래길을 모두 내려서 보고, 바윗돌을 찾아 헤매기 1시간 여. 끝내 찾지 못했다.
114로 물어 윤씨 할아버지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외출중. 야속하다. 그냥 돌아서야 할 판이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재통화 네번째 만에 드디어 연결. 굴바우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눈여겨 보지 않았던 능선의 반대편. 그렇게 큰 바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법한 숲이었다.
10명 이상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굴. 억겁의 세월동안 한번도 그치지 않았을 법한 물방울이 똑!똑!똑! 석간수다.
한입 가득 머금으니 헤매고 지친 몸에 바로 생기가 돌아온다. 굴 안에서 바라본 도심의 풍경 또한 색다르다. 굴 속에 들어앉은 건 산행자가 아니라 도시 같다.
입과 눈에 이런 호사를 주려고 지치고 곤한 길을 이끌었음인가? 분적산 굴바우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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