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턱까지 뚫린 콘크리트 도로 볼썽 사나워

▲ 송학산은 곳곳이 묘지와 제각 중턱까지 도로가 뚫려 있어 산의 훼손이 심하다.
<앞산뒷산> 39번째 산행지는 송학산. 서구 서창과 남구 대촌에 걸쳐 있는 데, 지난해 이맘때쯤 올랐던 불암마을 팔학산과 잇대 있는 산이다.
서구 쪽에서 산이 시작되는 절골마을을 찾아 나선다. 풍암동 서부 농산물유통센터 지나 서창방면으로 시원하게 뚫린 길은 곧 막히고, 구불구불 농로로 접어든다.
그 길에서 `학산사 입구’라는 팻말을 들머리 삼으면 팔학산이다. 송학산은 이곳에서 5분 여를 더 달려서 만나는 백마교 건너 바로 왼쪽으로 접어들어야 닿을 수 있다.
행정동으론 서구 서창동인 이 마을은 사동마을, 즉 절골이라 불린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절은 없고, 터조차 남아 있지 않다.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도 절의 존재는 알지 못했다. 혹 집성촌으로 일가를 이루고 있는 충주 박씨의 위세 높은 사당이 내력의 단초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뿐.
절골은 평화롭다. 춘삼월 인자한 햇살만큼이나 화사한 온기가 골목길에 가득했다.
농사짓는 마을의 생활상은 골목에서 그 대략이 읽힌다.
궁벽한 곳일수록 고샅은 좁고 후미진 데다, 담장은 헐고 날카로워 이방인들을 주눅 들게 하기 마련.
하지만 절골의 골목골목은 넓고 깨끗했다.
흙과 돌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토담은 기와집 처마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으로 손색없을 정도.
울 넘어 들여다보면 집집엔 회양목·수선화·꽝꽝나무로 단장한 정원이 예사. 자연을 벗 삼은 이들의 멋스러움이 빛을 발하니, 봄이 더욱 반가운 곳이 이 마을이다.
광대나물·개불알꽃·금창초 등 풀꽃들의 봄 인사 화사한 골목을 벗어나면 산이 시작된다. 초입에 잘 정돈된 계단은 눌재 박상(1474~1530)선생의 묘소로 이어진다.
세월과 씨름하며 뒤틀린 토종 소나무들이 거대한 봉분 2기와 어우러져 울퉁불퉁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후 산은 조림수인 리기다소나무가 점령. 하늘 높은 줄만 알았지 땅 넓은 줄은 몰랐던 듯 젓가락 마냥 위로만 쭉쭉 뻗었다. 빈약한 몸통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녹음, 산이 허전하다.
숲을 더 허망하게 만든 것은 묘지다. 송학산은 곳곳에 선산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명당일 수 있겠다. U자 형태로 둘러싸인 능선이 바람 막아주고, 분지 안에 쏟아진 햇살 온기를 더해줄 터. 풍수를 모르는 이라도 고개가 끄덕여 진다.
지체 높았던 조상의 위세일까, 출세한 후손의 정성일까. 묘소로 이어진 통행로는 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포장됐고, 넓다. 그 길은 중턱을 넘어 정상 부근까지 뻗어 있다.
따라서 성묫길을 따르면 정상 턱밑까지 발에 흙 묻히지 않고 올라설 수 있다. 마치 산을 오른다기보다 길을 걷는 듯하다.
산 자나 죽은 자 할 것 없이 인간들의 편의를 위해 손 댄 자연이 안타깝다.
그래도 자연은 변함없어 봄의 소임을 다하는 중이다.
생강나무 노란 꽃들이 능선을 물들이고, 진달래 붉은 꽃망울도 한껏 부풀었다.
발아래엔 이슬 머금은 양지꽃이 소담하고, 개불알꽃 위로 벌들이 쉬지 않고 날아든다.
꽃대 오른 산자고의 하얀 미소는 얼마나 싱그러운가.
찻길은 묘지에서 끝나고, 정상까진 잡목이 우거졌다. 애초부터 등산로는 따로 있었지만, 편한 길을 고집하다 진입지점을 놓친 것.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정상에 도달하니 찢기고 할퀸 상처를 보상해 주고도 남을 만큼 시원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대촌·서창 너른 들녘이 발아래 끊임없다.
내려서는 길은 한층 여유롭다. 제대로 된 등산로를 찾은 것.
하지만 하산 길에 만난 중년의 부부가 기분을 `깼다’.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한다.
그들은 손에 몽둥이 하나씩을 들고 있다. 아랫마을에서 산책을 나왔다는 폼 치곤 괴이하다.
설명인즉 이 산에 야생 개 5마리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 때론 사람도 공격할 만큼 포학하다고 했다.
그동안 “난을 캐던 사람이 당했다” “등산객 앞에 떡 버티고 위협했다”는 등의 얘기를 듣기만 했었는데, 최근에 직접 맞닥뜨려 혼비백산했다는 부부가 궁여지책으로 강구한 자위책이 몽둥이었다.
괜스레 불안해져 썩은 나뭇가지 하나 쥐고 산을 내려온다. 등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갑자기 앞에 나타날 것 같아 신경이 곤두선다.
도망치듯 한달음에 산에서 내려왔다. 내 눈으로 확인 못했으니 개의 존재는 들은 얘기일 뿐이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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