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소주방’

 그 집은 벽에 북어를 세 마리 걸어 두고 있었다. 개업할 때 부적 삼아 걸어두는 고시래 북어 같지는 않고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명태 노래에서처럼 혹 어떤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크- 그에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에 시가 되어도 좋다, 일까? 쫙- 쫙- 찢어져 이 몸이 없어질지라도 내 마음에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젊은 날에 그 노래를 절창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누군가가 걸어 두고 술 구색이라도 한 것일까? 주인장에게 물었더니 손님들 좋으라고 걸어두었다면서 의미심장하게 웃고 만다.
 옆에는 詩窓請供(시창청공) 그림액자가 걸리고 그 아래 근처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문 선생님은 앞좌석에 앳된 동자가 차 따르듯 술을 따른다. 먹빛 양복에 몇 올 남지 않은 앞 이마 흘러내린 부스스한 머리, 익살스러운 표정이 마치 그림 속 도석인물화처럼 앉았다.
 한 무리의 넥타이 부대들이 들이닥친다. 한적한 술청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데 그 불똥이 바로 주인 아저씨에게로 튄다. 묵은 상 치우고 새 상 보랴, 마늘 까랴, 동분서주하고 부부가 하는 집이 그렇듯 누가 주도적이냐에 따라 술집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는데 이집은 바깥 양반은 거드는 역할이다.
 도마질에 바쁜 부인이 말채찍하듯 재촉을 해도 남편은 묵묵부답 대꾸 한번 하는 법이 없다고 같이 간 일행의 귀띔이다. 그래도 한번씩 꼼짝 못하게 한다는데 미처 물어 보지는 못했다. 손자 손녀들이 와서 이쁜 짓하는 걸로 봐선 화목한 가정임에 의심할 바 없다.
 손님이 많이 들어서 초무침을 무쳐내는데 손이 열개라도 모자라겠다. 술상 보랴 “들깨 좀 내 오랑께!” 병어를 새콤달콤 무쳐 내더니 간 맞는가 보라고 한입 넣어 준다. “어쨔요?” “맛나요?” 술자리는 주방 가까운 데 앉고 볼 일이다. 한 볼테기 더 얻어먹을 수 있었으니….
 넥타이 부대들은 한 손에는 술잔 들고, 한 손에는 핸드폰 들고 어쩔 줄을 모른다. 아예 핸드폰 들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 엉거주춤 전화 받으랴, 그러니 술판이 온전할 리 없다. 푸짐하게 시킨 안주가 아깝다.
 지산동 법원 후문 삼거리에는 화통한 부부조가 하는 술집(주인 강선순·52)이 있다. 오전에는 무등산 밭을 가꾸고 오후에는 술집 문을 연다는데 밭도 가까운 데 있어서 운동 삼아 아침나절에는 거기 가서 산다는데 직접 기르는 채소가 그야말로 무공해라고. 그것을 손님상에 낸다며 자랑이다. 무공해 채소다 보니 요즘 같은 날씨에 반듯한 게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그래서 넉넉히 갈지만 절반은 버린다며 부지런하지 않으면 공급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바탕 손님이 훑고 나가자 다시 술청은 차분해지며 아까 도인처럼 앉아 있는 법무사 선생은 아직 그대로다. 오래 앉아있다 보니 이무롭다 여겼는지 술잔을 권하는데 사양 못하고 마술처럼 빨려들고 만다. 더구나 이집 단골 중 최고라는 분의 술잔이고 보면 황송하고 이 근동에서 문아무개 하면 모르는 이 없다며 건네는 술잔이 즐겁다.
 비도 오고, 술잔 받았으니 그냥 말 수 없다. 탁자 넘어 술잔 건너 간다.
 지산동 법원 후문 삼거리, 232-0464
 박문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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