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9일) 비온당게 경운기로 로타리 치고 있었제. 배추 모종 심을라고. 근디 어쩐일인가?” 그는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날짜를 잊어버린 모양이다. 밀짚 모자를 눌러쓴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광주 남구 양과동 폐교에서 풍물을 가르치며 농사를 짓고 있지만, 도무지 농사꾼 같지 않고, 어딘가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 전통 풍물을 발전시킨 전문 타악그룹 전통문화연구회 `얼쑤’ 김양균(45) 대표를 마주한 첫 인상이다.
 광주지역 사물놀이패에서 `얼쑤’란 이름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그만큼 전통 풍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얘기다. `얼쑤’ 체험장은 효천역에서 나주방면으로 가다보면 포충사 쪽으로 빠지는 큰길가 남구드라마세트장 옆에 있는 폐교(옛 대촌동초등학교)에 위치해 있다. 외부에선 꽤 유명한 곳이다. 세계 최정상의 타악기 연주자 최소리씨도 이 곳에 머물며 `두들림’(두드려 울리는 울림소리)을 연구했고, 일본 학생들도 우리나라 풍물을 배우기 위해 매년 찾는다. 얼마전 일본 고등학생 20여 명이 다녀갔다.
 `얼쑤’ 체험장엔 근사한 그림이나, 정갈한 책상도 없다. 반듯한 거울도 찾기 어렵다. 당시 초등학생들이 사용한 교실 옛 모습그대로다. 대신 젊은 예술가의 만만치 않은 패기와 열정이 꿈틀거린다.
 `얼쑤’는 수많은 국내·외 공연 등을 치러냈다. 일본 니이치 엑스포 개막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얼쑤’에 대해 김덕수 사물놀이를 기초로 전통사물놀이를 퓨전화한 타악 그룹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그는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 사물놀이`장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잘하는 공연보다 재미있는 공연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7년 전부터 퓨전타악 공연을 펼쳐왔다.
 `퓨전타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관객과 같이 하는 음악이란다. “무조건 두드린다고 좋은 것은 아니잖소. 전통사물놀이는 관객들이 식상해 하고…, 타악도 내용이 있어야 해. 2~3분 두드리다보면 그 소리가 그 소리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공연이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여.”
 그는 오는 1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타악연주자 최소리씨와 공연을 펼친다. 그에게는 이번 국립극장 공연이 좋은 기회다. `얼쑤’의 모습을 서울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이다. 지방의 `얼쑤’에서 중앙, 세계적인 `얼쑤’로 거듭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서울공연에 이어 전주소리축제 공연이 끝나면 `얼쑤’의 모습도 많이 변할 것이란다. 악기도 새로 개발했다. 기존 파이프 음계에 2옥타브까지 올라가는 악기를 선보이기로 한 것.
 “최근 공연의 흐름은 관객과 같이 호흡하는 것이 추세입니다. 지금까지 공연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다면 앞으로는 와서, 보고, 직접체험하고, 즐기고, 오감(五感)을 만족하는 공연이 될 것이오.”
 그는 `얼쑤’를 세계적인 타악그룹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우리나라 전통 타악기와 세계 여러나라의 타악기를 결합하는 것이다.
 그의 사물놀이와의 인연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80년 가톨릭청년운동을 하면서 풍물을 처음 접했다. 당시 풍물(사물놀이)을 한다는 것은 데모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 (데모를)하고 싶어 했간디. 시대가 그랬제. 운동을 하다본게 자연스럽게 꽹과리를 두드리게 되드라고. 거기서 미쳐부렀어. 한마디로 풍물에 미쳤제. 결국 이 길로 들어섰소.” 그는 이 일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김양균씨는 1992년 1월12일 단원 4명으로 출발, 전통풍물을 발전 시키고 대중화에 앞장서온 선장이다. 현재 회원은 1000여 명이 넘는다.  당시 50만원을 빌려 주월동에서 공간을 마련한 그는 2002년 남구 양과동 옛 대촌동초등학교 폐교를 매입, 강의실과 공연장, 풍물놀이 체험장,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도자기 체험교실, 염색체험실까지 운영하고 있다.(문의 671-8082) 문화체험터는 흙을 만지고, 우리 풀과 꽃을 보고,우리의 소리를 배우고 가라는 그의 뜻이 담겨져 있다.
 그에게 진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묻자 상설공연장과 야외 소극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체험은 막힌 공간이 아니라 탁 트인 공간에서 체험하는 것이며 누구나 와서 연습하고 공연을 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와 후배들의 손으로 세운 `문화체험터 얼쑤’는 새로운 모험이다. “지금까지 후회한 적은 없었어요. 처음엔 먹고 사는 게 힘들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후배들에게 공연이나 작품을 넘겨줬소. 얼쑤가 더 발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이오.”
 도시 가족들이 와서 그릇을 직접 만들고, 차도 마시고, 자연적인 공간에서 풍물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게 그가 꿈꾸는 풍물농촌이다.
 그는 미래를 준비한다고 했다. 풍물은 나이 먹으면 할 수 없기 때문에 단원들과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풍물농촌이 그의 궁극적인 꿈이다. 그 것은 안정된 생활속에서 `얼쑤’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방증이니까 말이다.
 미끄럼틀·그네·시소에서부터 창틀·마룻바닥까지 수년전 초등학생들이 사용한 옛 모습 그대로인 보금자리에 풍물의 미래와 도전, 새로운 실험정신과 의지가 살아 숨쉬고 있다.
글=이석호 기자 observer@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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