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며칠 전 시내버스 안에서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자 아주머니 한 분이 올라탔다. 순간 20대 젊은이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가방을 챙겨 뒤쪽으로 옮겨와 섰다. 하나 남은 빈자리는 자연스레 아주머니 차지가 되었다.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던 젊은이의 옆모습이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뉘 집 아들인지 참 따뜻하고 반듯하구나.’ 남을 위해 제 몸의 피곤을 자청하는 작은 배려를 보는 마음이 훈훈했다.
 내 주위엔 틈만 나면 노점에서 푸성귀를 사다 나르는 이가 있다. 그것도 깜깜한 밤, 퇴근길에 길가에 쭈그려 앉은 할머니에게서. 봉지를 들여다보면 빼빼 말라버린 고추며 시들시들한 상추 열무 깻잎 따위다. “다 팔아야 집에 들어간다고 하신디…. 기껏 몇 천 원인데. 나야 그 돈 없어서 못 살 일도 없고….” 뉘라서 살림 헤픈 주부라고 타박하랴.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당신 아이들도 당신을 닮아 고운 심성을 갖고 있겠지요.’ 이런 날이면 퇴근 길이 한 결 가볍고 즐거워진다.
 삼촌 한 분이 있다. 어려서부터 무척 따르던 가까운 사이다. 군청의 만년 계장으로 그러께 정년을 했다. 술하고 사람 좋아해 숙모는 속 깨나 썩었다. 맞벌이하며 삼촌 뒤치다꺼리에다 아이들 수발까지 했으니 말이다.
 “자네 삼촌이 얼마나 애간장을 녹였는지 안가. 술을 사줘도 높은 사람들을 사줘야지. 밑에다 잘해봐야 뭐가 있어. 남들 다 진급하는데 입바른 소리나 해대고….” 삼촌은 허드렛일 하는 말단 직원들이 안쓰러워 명절 선물만은 잊지 않았던 분이다. 숙모는 남편의 처세에 불만이 많다지만 나는 삼촌을 존경한다. `얼마나 깨끗하고 떳떳한 공무원이었던가.’
 한가위가 다가오니 여기저기 술렁인다. 가만히 있어도 명절 분위기가 절로 느껴진다. 다만 서민들은 살림살이가 팍팍해 시름이 깊다. 그 가운데 선물 걱정도 만만치가 않다.
 본래 추석은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명절이다. 주변에 감사를 표시하는 건 도리에 어긋난 일이 아니리라. 또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던가. 거둔 곡식과 과실로 모처럼 어려운 이웃을 살필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인정 넘치는 나눔의 공동체는 한가위가 절정이었다. 이런 미풍양속이 께름칙하게 변질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선물로 둔갑한 뇌물이 오고가는 탓이다. 오죽하면 해마다 암행감사가 뜨고, 상납 관행을 거두자는 호소가 나올까. 정말 애들 보기 민망한 추태들이 한가위 밝은 달을 가리곤 한다. 뇌물의 이치는 단순하다. 이해 당사자들이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만한 고액의 뭔가를 주고받는 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선물과 뇌물을 딱 긋는 잣대는 없다. 대개 공직사회에서는 3만원을 경계 삼는다. 이견이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무난한 약속이라 하겠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 미국만 해도 우리 돈 2만원 선이다. 그 한도를 넘기면 큰 일 날 것으로 알고 철석같이 지킨다 한다. 우리 수준이 명절마다 뇌물타령이니 답답하고 우세스럽다. 이 좋은 명절을 앞에 두고 말이다.
 `진짜’ 선물은 나눔과 배려에 있다. 상대가 나보다 덜 가진 사람, 지위가 낮은 이, 신체적으로 약자라면 어떨까. 애당초 뇌물시비가 들러붙을 계제가 못된다. 올 추석엔 그런 선물로만 넘쳐났으면 좋겠다. 꼭 돈과 물건이 아니라도 말이다. 내 자리를 비켜주고, 노점 할머니의 푸성귀를 사주고, 높은 분 대신 밑엣 분 양말 한 짝이라도 챙겨주는….
 사람 사이에 층이 있을까마는 어려운 이웃을 `아래’라 치자. 그들에게 쏟는 정성이라면 아낌없이 흘러흘러 아름다운 선물이리라.
hwpoong@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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