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밖에 나간다고 그랬제? 언제간디. 꼭 가야 헌당가? 세상이 요리 시끄러운디 어딜 간다고 그래. 전쟁이라도 나믄 어찔라고.”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월요일 저녁이다. 어머니께서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이번 달에 외국에 나갈 것 같다’는 내 말이 못내 걸리셨던 모양이다. 워낙 자식걱정을 끼고 사는 분인지라 겁이 나기도 했을 법하다. 그러나 당신이 살아온 세월을 짐작해보면 그 무섬증에 수긍이 간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제의 가혹한 공출로 배 곪기를 일삼았다. 6·25 전쟁기엔 일가붙이를 잃기도 했다. 게다가 어머니의 고향은 지리산 자락이다. 밤엔 빨치산, 낮엔 토벌대에 시달리면서 벌벌 떨며 지냈다. 총칼을 치켜든 군인들, 눈앞에서 피를 쏟고 쓰러진 주검들, 도망가는 사람들, 뒤쫓는 총소리…. 전후세대는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살풍경을 직접 겪어온 셈이다. 온종일 쏟아진 핵실험 뉴스에 새삼 옛 일을 떠올려 진저리를 쳤을 게다.
 “걱정 마세요. 전쟁이 그리 쉽게 나겠습니까. 무슨 일 있을 것 같으면 가만히 있을 테니 괜히 근심 쌓지 마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서 바로 후회를 했다. 우선 `안가겠습니다’가 좋았을 걸. 전쟁이 쉽지 않느니 어쩌니 하며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드리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전쟁이란 너무도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불안할수록 피붙이 끌어안고 목숨 부지해야 하는 모성을 헤아리지 못했음이다. 전쟁을 먼 나라의 비극쯤으로 관념화해 버린 채 말이다.
 시공사가 펴낸 《고래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에는 고래잡이에 관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있다.
 “고래사냥꾼들은 항상 새끼고래, 어미고래, 마지막으로 아비고래 순으로 작살을 던진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고래도 달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둥근머리 모양의 길잡이고래떼를 공격할 때는 가운데 두세 마리만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상처 난 친구를 지켜 주려는 무리 전체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범고래는 한 마리가 작살을 맞으면 남은 고래 모두가 무리 지어 공격을 하기 때문에 고래사냥꾼들은 이들을 피해 왔다.”
 나는 어머니의 절박한 목소리에서 고래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구체적인 전쟁을 상상해야만 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에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하고 있다. 폐허가 된 집터에서 딸의 주검을 안고 오열하는 모습. 끝없이 이어지는 자살폭탄의 자원자들. 가족의 원수를 갚겠다는 절규. 외신이 전하는 그들의 분노와 결의는 결코 그 어떤 강력한 무기로도 잠재울 수 없는 것이었다. 설사 제 목숨을 앗아간다 하더라도 빨려 들어가야 하는 전쟁의 속성이다.
 지금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강경한 대북제재가 대세처럼 보인다. 화해와 교류협력이 마치 핵을 키워온 것처럼 뭇매를 맞고 있다. 이상한 것은 미국의 여론이다. 부시의 대북 강경책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우리 안에서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의 실패 탓으로 돌리는 것과 사뭇 다르다. 아무도 북한을 두둔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법은 더욱 또렷해진다. 그럼에도 대화뿐이다. 봉쇄나 압박이란 어쩌면 수위를 높여 전쟁으로 가는 길일 터이다.
 피붙이를 향한 작살에 고래는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든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오죽하랴. 그 지긋지긋한 분단과 동족살상의 악몽을 대물림할 수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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