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1급 김병선씨

 최근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수시모집에 합격한 김병선(31·지체장애 1급)씨.
 다시 학업이라는 끈을 잡았다. 14년만이다. 하지만 다닐 수 있을까? 경제적 여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도전도 안 하고 포기하지 말자’가 그의 신념이란다. 이 신념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1992년 그는 손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됐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해 학교에 갈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허리 쪽에 맞았던 침이 잘못돼 척추신경의 마비로 손과 팔 등 거의 온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에서 6년을 보냈고, 욕창·엉덩이뼈 골절에 의한 근육 마비로 다시 5년 여를 병마에 시달렸다.
 “거의 죽을 상황까지 갔죠. 그래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더군요.”
 병원에서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손을 쓸 수 없어 나무 젓가락 두 개를 이은 막대기 끝에 고무를 달아 입으로 책장을 넘기며 과목별 문제집을 읽어보길 수십 번. 영어 단어·수학 공식 외우기도 수십 번. 그렇게 2004년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 합격했다.
 “등록금을 마련해보려고 애썼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결국 등록을 포기했다.
 그는 현재 지체장애인생활시설인 보람의 집(광산구 덕림동)에서 지내고 있다. 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처지.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는 어머니도 당뇨·심장판막증 등의 지병을 앓고 있어 시설로 들어왔다.
 그의 방 한 쪽에는 영어 단어가 적힌 종이들이 붙어 있고, 장애인의 권리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함께 걸음》이라는 잡지도 보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인 신문 등을 접하며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달려온 그다.
 “그땐 등록금 때문에 포기했지만 `또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찾으려고 노력하면, 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히 결실이 있을 거에요.” 그렇게 믿고 싶다.
 학교에서 일부를 보조해 주지만 모자란 등록금 마련은 여전한 고민거리다. 하여 아름다운 재단에 신청을 해놓았다. 후원해 줄 이들도 기다리고 있다.
 “고등학교까지는 장애학생들에게 지원을 많이 해주는데 대학에서는 쉽지 않더라구요. 이동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학교도 많고요.”
 현실에 대한 불만은 사회에 대한 바람으로 이어진다. “장애인들의 삶의 경험이 이 사회의 또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요. 때문에 장애인들도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하고요.”
 장애인으로의 삶, 병원에서의 투병 생활은 그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과제를 던져줬다.
 “병원치료는 병이 낫거나 악화되지 않는 쪽으로만 맞춰져 있죠. 심리 치료·직업 재활도 함께 가는 시스템이 돼야 합니다. 병원 내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싶어요.”
 장애인들도 교육 받고 `직업 자립’을 통해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가 사회 속으로 버겁지만 의미있는 발을 내딛었다. 후원 문의 944-2506  
조선 기자 s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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