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전직 단체장을 만났다. 민심을 속속들이 알 수야 없다지만 그의 낙선은 의외였다. 부패사건에 연루된 적도 없고 일 또한 잘했다는 평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후보가 그리 출중한 인물도 아니어서 현직 단체장의 무난한 당선을 점쳤었다. 아무튼 ‘불의의’ 낙선으로 그가 받은 충격은 꽤 컸다. 한동안 외부와 단절하고 칩거할 정도였다. 그는 패배의 원인으로 상대 후보측의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을 꼽았다. 예를 들어 ‘숨겨둔 자식이 있다더라’ ‘수 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더라’는 식이었다.
“그걸 누가 믿겠는가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집요한 거짓공세에 넘어간 유권자들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상대 후보측을 고소한 그가 더욱 억울한 것은 주변의 반응이었다.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난이었다. 선거에서 노상 있을 수 있는 일을 꼬투리 삼아 승복하지 않는 건 비겁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역을 위해 전·현직 단체장이 무조건 ‘화해’하라는 압박이었다. ‘덮자’는 게 옳다고만 하는 논리 앞에 진실 혹은 자신의 무고함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우리네 선거에선 아무 말이나 마구 해대도 용인하는 풍토가 여전하다. 그 더러운 선거전에 능란한 정치꾼들은 한 표라도 득이 될 성 싶으면 막말을 해댄다. 왜냐면 뒷감당에 자신이 있는 게다. 훗날 고소를 해오더라도 상대측의 흠집을 잡아 맞고소를 하면 된다. 어차피 피차 손해라는 인식을 주고 나중에 ‘모양 좋게 동시에 취하하자’는 거래를 할 수 있다. 특히 선거후유증을 털고 화합하자는 여론몰이가 가능하다. 선거이후에 지역발전을 운위하며 유독 화해만을 종용하는 언론을 눈여겨 보라. 그게 다 당선자 편에 아부하는 곡학아세에 다름 아니다. 결국 시시비비는 뒷전이고 ‘정치력’으로 포장해 어영부영 넘어가고 만다.
박광태 광주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벌인 싸움도 비슷하다. 박 시장은 선거기간중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광주 R&D 특구 지정이 안됐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말대로라면 의원들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했다. 아무리 소속 정당이 다르다고 지역 일을 훼방해서야 되겠는가. 정당 대결이 뚜렷했던 선거전에서 우리당 후보에게 미칠 손해가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또 박 시장은 민선 4기 취임 기자회견에서 고발성 발언도 했다. ‘노벨평화상수상자 광주정상회의 국비지원을 요청했는데 지역 국회의원들이 반대해서 예산이 깎였다’는 요지였다. 사실이라면 의원들은 시민들에게 백배 사죄해야 할 일이었다.
7명의 의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박 시장이 당선을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이어 취임 기자회견의 발언도 사실이 아니라며 고소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고소사건은 결국 흐지부지 무마됐다. 말하자면 ‘지역을 위해 시장과 의원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화해를 한 셈’이다. 박 시장이 유감을 표시하고 의원들이 수용하는 선에서 고소취하가 이뤄졌단다. 아주 전형적인 저질 정치의 수순이다.
가뜩이나 고소고발이 많은 게 우리네 선거 뒤끝이다. 애초에 사법기관이 이런 정치공세의 진실까지 밝혀주길 기대하는 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실이 뭔지도 모른 채 이 말 저 말에 휘둘린 유권자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핏대를 세우며 으르렁대다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흐지부지하는 정치인들의 기예에 시민들은 넋이 나갈 지경이다.
국회의원들이 정말로 특구도 반대하고 예산도 깎았을까, 아니면 박 시장이 거짓말을 했을까…. 아직도 이런 궁금증을 품고 있으면 ‘1등 시민’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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