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밤10시, 어느 고등학교 앞이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대가 순식간에 혼잡하다. 시내버스 출입문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마중 나온 승용차, 학원 승합차…. 이런저런 차량들이 뒤엉킨다. 3학년 학생들이 진즉 학교를 빠져나갔으니 망정이지. `수능’ 이전에는 밤 11시 넘어 이런 북새통이 한바탕 되풀이되었다.
 왁자지껄하다. 웃고 떠들고 까불어대는 소리가 어둠도 걷을 기세다. 뭐가 그리 신이 날꼬. 하루종일 책상에 붙들려 맥이라곤 없을 법한데. 아이들의 기색이 자못 팔팔하고 낭랑하다. 까닭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역시 친구다. 삼삼오오 어깨를 비벼대며 장난을 치고 끝없이 조잘대며 즐거워한다. 그 표정들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전쟁’같은 공부가 아니던가. 교사도 학부모도 이 아이들 세계의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으리라. 그 고역과 애환을 동행 아니면 뉘라서 헤아릴까. 오로지 저희들끼리가 버거운 학업의 위로요 기쁨이리라.
 `그래! 학교의 처지가 입시학원과 하등 다를 바 없어 안타깝지만. 그래도 학교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타인, 친구를 만나게 해주잖아. 또 남과 더불어 사는 법을 연습하는 최초의 장이기도 하지. 아이들의 가정 환경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로 인해 개성 또한 제각각이지만. 그것 때문에 나와 다름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니까. 천차만별의 세상에 앞서 그 축소판을 경험하는 게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배우기 시작하는 곳. 그게 학교의 의미일거야.’
 착각이었다. 대체로 너나없이 한데 부대끼던 예전의 학교가 아니었다.
 다시 그 학교 풍경이다. 하교가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학교 한 모퉁이 건물엔 오히려 불이 켜진다. 아! 기숙사다. 밤 10시는 어떤 아이에게 `집으로’가 아니다. 더 깊은 학교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이 학교가 유별나서도 아니다. 대체로 명문(?) 사립학교들일수록 형편이 비슷한 모양이다. 학업성적순으로 기숙사 수용인원을 가린단다. 학교 생활의 조건이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지 않은 것이다. 혹시 여럿이 한데 어울리는 `조화’를 상상하는 건 사치다. 학교가 어찌 돌아가는 지 모르는 소치다. 학교는 이미 다수를 따돌리고 소수를 우대하는 차별적인 공간이 되었다. 입학하자마자 우열을 딱 가려 버리다니…. 학교로 혹은 집으로 함께 걸어보지 못한 채 어찌 친구가 될 수 있으랴. 학교는 일찌감치 공부 `잘하고’와 `못하고’로 편을 갈라 버렸다.
 그런데 교실에서 코앞인 기숙사조차 허겁지겁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다. 남보다 빨리 컴퓨터를 차지해야 인터넷 강의를 받을 수 있어서다. 더욱 가슴이 아려오고 짠하다. `저 속에서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싹 틔울 겨를이 있을까.’
 알고 보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시끄럽게 교문을 나서는 어떤 아이들과 기숙사로 달음질치는 몇몇의 대비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 양편은 3년 내내, 아니 평생을 가도 교류할 일 없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서로를 이해할 일도 함께 머리를 맞댈 일도 없이 말이다.
 지금 학교 밖 어른들 세계의 편가르기는 추악하다. 상대의 입장을 알만한 데도 딱 잡아떼며 선을 긋기 일쑤다. 예컨대 농촌 출신 단체장과 언론인들이 농민시위대를 엄단하라고 목청을 돋우는 게다. 언제부터 기업과 권력의 편이 되었는지. 형편을 빤히 아는 축들도 저 난리인데…. 행여 섞일세라 아예 따로 키우는 저 아이들 세상은 어찌될까나.
 hwpoong@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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