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하다. 웃고 떠들고 까불어대는 소리가 어둠도 걷을 기세다. 뭐가 그리 신이 날꼬. 하루종일 책상에 붙들려 맥이라곤 없을 법한데. 아이들의 기색이 자못 팔팔하고 낭랑하다. 까닭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역시 친구다. 삼삼오오 어깨를 비벼대며 장난을 치고 끝없이 조잘대며 즐거워한다. 그 표정들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전쟁’같은 공부가 아니던가. 교사도 학부모도 이 아이들 세계의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으리라. 그 고역과 애환을 동행 아니면 뉘라서 헤아릴까. 오로지 저희들끼리가 버거운 학업의 위로요 기쁨이리라.
`그래! 학교의 처지가 입시학원과 하등 다를 바 없어 안타깝지만. 그래도 학교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타인, 친구를 만나게 해주잖아. 또 남과 더불어 사는 법을 연습하는 최초의 장이기도 하지. 아이들의 가정 환경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로 인해 개성 또한 제각각이지만. 그것 때문에 나와 다름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니까. 천차만별의 세상에 앞서 그 축소판을 경험하는 게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배우기 시작하는 곳. 그게 학교의 의미일거야.’
착각이었다. 대체로 너나없이 한데 부대끼던 예전의 학교가 아니었다.
다시 그 학교 풍경이다. 하교가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학교 한 모퉁이 건물엔 오히려 불이 켜진다. 아! 기숙사다. 밤 10시는 어떤 아이에게 `집으로’가 아니다. 더 깊은 학교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이 학교가 유별나서도 아니다. 대체로 명문(?) 사립학교들일수록 형편이 비슷한 모양이다. 학업성적순으로 기숙사 수용인원을 가린단다. 학교 생활의 조건이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지 않은 것이다. 혹시 여럿이 한데 어울리는 `조화’를 상상하는 건 사치다. 학교가 어찌 돌아가는 지 모르는 소치다. 학교는 이미 다수를 따돌리고 소수를 우대하는 차별적인 공간이 되었다. 입학하자마자 우열을 딱 가려 버리다니…. 학교로 혹은 집으로 함께 걸어보지 못한 채 어찌 친구가 될 수 있으랴. 학교는 일찌감치 공부 `잘하고’와 `못하고’로 편을 갈라 버렸다.
그런데 교실에서 코앞인 기숙사조차 허겁지겁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다. 남보다 빨리 컴퓨터를 차지해야 인터넷 강의를 받을 수 있어서다. 더욱 가슴이 아려오고 짠하다. `저 속에서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싹 틔울 겨를이 있을까.’
알고 보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시끄럽게 교문을 나서는 어떤 아이들과 기숙사로 달음질치는 몇몇의 대비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 양편은 3년 내내, 아니 평생을 가도 교류할 일 없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서로를 이해할 일도 함께 머리를 맞댈 일도 없이 말이다.
지금 학교 밖 어른들 세계의 편가르기는 추악하다. 상대의 입장을 알만한 데도 딱 잡아떼며 선을 긋기 일쑤다. 예컨대 농촌 출신 단체장과 언론인들이 농민시위대를 엄단하라고 목청을 돋우는 게다. 언제부터 기업과 권력의 편이 되었는지. 형편을 빤히 아는 축들도 저 난리인데…. 행여 섞일세라 아예 따로 키우는 저 아이들 세상은 어찌될까나.
hwpoong@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