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관청을 끼고 있는 `먹자골목’ 밥집 할머니는 외상장부가 서너 개다. 단골로 드나드는 공무원들의 부서별로 하나씩이다. 이상한 일은 밥 먹는 사람과 밥값 내는 사람이 따로 있다.
 직원들은 점심때 몰려와 밥을 먹은 뒤 장부에 적고 간다. “○○과 외상 얼마나 됩니까?” 일주일이나 보름 간격으로 처음 보는 이가 찾아와 묻는다. 그리곤 현금으로 싹 결제를 하고 간다.
 간혹 외상값이 밀린다 싶으면 직원들에게 채근을 한다. “외상 좀 갚아.” “며칠만 기다리씨요. 사람 보내께요.” 물론 며칠 사이에 `누군가’가 찾아와 밀린 밥값을 낸다.
 업자들이 관청의 거래 부서에 뇌물을 건네는 방법이다. 액수로 쳐도 예전에 비해 크게 적은 편이니 `약소하다’고 한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여럿이 나눠 먹으니 별 죄의식도 없다. 오히려 두터운 동료애(?)만 쌓인다. 업자들도 봉투 들고 사무실 들락거릴 일이 없어 편하다. 외상 장부가 여러 개였다니 적어도 그 관청엔 음성적 관행인 게다.
 이런 사실을 털어놓은 이도 역시 사업자다. 그는 쉽지 않게 말문을 열었지만 끝내 할머니 찾는 일을 숙제로 던져줬다.
 그의 태도에서 `그 정도 관례는 괜찮지 않느냐’는 분위기를 읽었다. 글쎄, 이 정도를 부정부패라며 캐묻는 것은 곤란한 일일까?
 워낙 거액의 뇌물사건이 빈발하고 부동산 투기와 세금탈루가 끊이지 않는지라 웬만한 액수는 범죄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고위 공직자들이나 정치지도자들이 연루된 로비사건은 한해도 거른 적이 없다. 대법원장의 세금 누락 건이나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투기의혹도 그렇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고의성을 부인하더라도 일반의 정서는 `다들 그렇고 그런 게지’로 흐른다. 새삼 분노할 일도 없이 체념하고 만다. 대학교수들의 논문 표절도 언제나 관행이 핑계다. 심지어는 남의 손을 빌려 쓴 작품도 제것인 양 팔아먹는 유명인사들도 있다.
 누가 봐도 멀쩡한 사회 지도층들이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죄다 구린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말썽이 나면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하는 태도는 볼 수가 없다. 모두가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는 듯 억울해한다.
 `도덕불감증’을 통탄하는 건 비난의 대상이 도처에 가득하고 어찌 보면 스스로에게 손가락질을 해야한다는 거다. 사회 모든 분야가 `그 정도쯤이야’하는 불감증이다. 어느 구석도 안심할 데가 없는 것이다. 굳이 사회 병리현상을 연구하는 전문가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없다. 그냥 우리 주변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안다.
 토지 보상가를 높게 받으려고 어린 자식들까지 동원해서 나무를 심는 어른들은 비난의 대상도 못된다. 행여 그런 행태를 욕하다간 물정 모르는 화상이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까닥하다간 인간관계에 금이 간다.
 연말정산에 허위자료를 내는 일도 그렇다. `그까짓 세금 몇 푼 돌려 받으려고?’ 하며 함부로 나무라선 안 된다.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고발하는 기사에 `그런 것까지’라는 힐난도 돌아왔다.
 “에이 아무리 없어도 세상 저리 살면 안되지”하며 서로 다독이며 위로하던 옛 시절이 그립다. 거개가 헐벗고 주리던 그때가 차라리 인간답고 아름다웠지 싶은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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