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매일 두 아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며 맘을 졸인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으리요. 인심 사납고 험한 세상이 아니던가. 어른들도 제 몸 하나 온전히 간수하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만사가 불안하다. `하지 마라’ `조심해라’ `가면 안 된다’를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먹는 것 입는 것들도 어지간한 정성으론 잘 가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때때로 찾아오는 병치레는 피할 수 없다. 크고 작은 사고 또한 불가항력이다. 손발을 씻기고 잠자리를 봐주고 나서야 탈 없이 보낸 하루의 긴장이 풀린다.
 그리곤 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갈망한다. 허나 안타깝게도 눈을 뜨면 더욱 각박한 하루가 버티고 있다. 밤사이 오만가지 흉악한 사건들과 해괴한 뉴스들이 기를 꺾어 놓는 탓이다.
 저마다 `더 잘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쓴다지만 기실 앞가림에 허덕댈 뿐이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사람’ 살 곳 못되는 난장판이 된 지 오래인 게다. 이제 어른들은 그 누구도 아이들의 `안녕’을 기약할 수 없다. 이러다 영영 `이젠 괜찮아’라는 말을 하지 못할 성싶다.
 그게 세상이고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형편없는 삶의 조건들이 각자에게 부여된 운명이기도 하니까. 알고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한 시대, 한 시절이라도 백성들이 순탄한 적은 없었다. 공맹(孔孟)의 시대에도 말세라는 자탄이 자욱했고 소크라테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요즘’ 세태를 비관했다지 않는가. 어찌 보면 그저 시류에 몸과 마음을 맡겨 일신의 안위를 도모함이 심간 편한 범인(凡人)의 생이리라.
 그러나 사람의 업이란 천차만별로 나뉘어 저마다의 역할극을 피할 도리가 없다. 세상을 돌리는 원리는 아귀를 꿰어 맞추듯 절묘한 것이어서 이 또한 숙명처럼 엄중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시류에 대고 삿대질을 해대고 남의 일에 참견함으로 밥을 빌어야 한다.
 `기자질’도 그런 부류이나 굳이 억울할 일도 특별할 직업도 아니다. 예컨대 교사가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듯, 택시기사가 승객을 태워 목적지로 차를 몰듯, 자동차 공장 노동자가 볼트를 단단히 조여대듯 <광주드림> 또한 자연스런 시류의 한줄기인 셈이다. 하여 지난 3년 동안 어설픈 훈수를 두고 아이들의 미래를 지렛대 삼아 쓴 소리를 퍼붓는 나름의 역으로 밥과 업을 삼았다.
 순탄한 인생일지라도 찢긴 살갗을 꿰매고 고름을 짜내고 더러는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야 할 때가 있다. 아니, 평생을 그렇게 돌보며 필요한 처치를 해야만 건강을 유지하고 명줄을 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광주 공동체도 사람살이 못지 않다.
 세상이 `이 만큼’이라도 돌아가려면 구린데를 들춰내고 곪은 상처에 우악스럽게 손을 대야 한다. 그걸 어찌 <광주드림> 저 홀로 감당할 수 있으리요 마는 천만다행인 건 광주란 무대를 쓱∼ 둘러보아 맞춤한 대역이 없다고들 했다.
 그러나 신문도 살림인지라 형편이 여의치 못해 오늘 `낮은 목소리’부터 작별을 고한다. 못 다한 이야기들은 진용을 새로 짠 <광주드림> 이 풀어낼 것이다.
 돌아보니 보잘것없는 잡문들이 부끄럽기만 하다. 애써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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