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으나 너무 한적한 곳 담양 `모현관’

▲ `모현관’이 있는 연못.

 사진은 담양 대덕에 있는 미암일기(眉巖日記)로, `연계정(蓮溪亭)’에서 판각을 보관해둔 `모현관’(慕賢館)이 있는 연못을 건너다 본 모습이다.

 이곳은 조정에 나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고 19년의 긴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던 조선중기의 문신 미암 유희춘이 머물며 자신의 호가 붙은 일기를 썼던 곳으로, 한낱 개인의 소소한 일상사에 지나지 않았던 그 기록은 너무나도 깊고 넓은 내용을 담고 있었던 나머지 임진왜란으로 선조 25년 이전 사고의 기록이 유실되자, 그것을 대신해서 선조실록을 쓰는 사료가 됐다.

 어찌 보면 그것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 투성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가족들과 나눈 얘기, 교우관계, 조정과 관리들의 생활, 관혼상제, 풍편으로 듣는 세상사 등속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것이 얼마나 정확하고 진솔했는가 하면 그가 한 외간여자와 바람을 피워 성병을 얻었다는 이야기와, 객지생활의 몸가짐에 대한 소소한 부부간의 편지글까지를 적을 정도였다. 살림살이의 작은 면면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결들, 그 작은 구체성의 잣대로 바라본 세상사의 해박한 통찰력이 그것으로 하여금 사초가 되게 한 것이다.

 인구 140만의 메트로폴리탄 광주는 담양, 화순, 장흥과 같은 농촌지역은 물론 더 멀리는 지리산과 고흥, 신안 같은 서남해 연안과 불가분의 연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광주와 전남 그리고 각 군단위로 나뉜 행정구역 단위의 구분은 쉽사리 그것들 사이의 넘나들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 것은 또 제도의 영역뿐 아니라 거기에 사는 우리들 개개인의 일상생활 속에도 깊이 스며들어와 있다. 현재의 생활에서부터 미래의 계획에 이르기까지 이즈음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소식들에서 이 지역의 틀을 벗어나기는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실제 하는 우리의 몸과 그 몸이 살아가는 생태환경은 이런 제도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다. 

 도심에서 이곳까지 우리는 통상적인 교통수단인 승용차로 30분 정도에 갈 수 있다. 관공서와 은행을 비롯한 오피스빌딩들, 온갖 초현대적인 거리의 간판들과 쇼윈도들로 가득 찬 그곳으로부터 조금만 벗어나면 계림동 재개발지구와 서방시장, 말바우시장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청옥동에 이르면 창밖은 아예 여느 농촌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더 가서 창평 시장국밥 한 그릇을 점심으로 먹고, 캔커피를 하나쯤 들고 가 이곳에서 말라비틀어진 연못 속의 연잎이나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볼 수 있다.

 한여름 이곳의 녹음은 내 몸을 중심으로 정자와 나무 물, 들판, 대숲과 산을 손대지 않고 자연의 본성 그대로를 최대한 살려 조영한 옛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 곳은 `문을 닫고 방 안에 앉아 있으면 내 안이고, 문을 열어젖히면 친지간이 나’인 무아지경이다.

 물리적으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온갖 관념 덩어리들에 의해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곳처럼 느껴진다. 최근 필자는 광주를 찾는 외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었던 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물염적벽, 독수정, 소쇄원, 취가정, 식영정, 남극루, 송강정, 면앙정 등과 같은 원림들을 살펴본 그들의 `놀라움’을 보고 새삼 우리의 자산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것은 원림의 물리적 구성, 역사적 사실과 같은 지엽적인 것을 너머 그곳에 살았던 사람과 자연, 세상사 사이에 얽힌 총체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이다. 그 것을 전통이나 고전과 같은 지나간 시대의 케케묵은 유산으로 치부해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윤정현 <시인>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