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아여고 교정에 있는 `낙우송’

▲ 1962년 1학년 C반 기념식수인 수피아여자고등학교의 낙우송.

오늘도 수피아여자고등학교 다목적 강당 옆 교정에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1962년 10월9일 1학년 C반 학생 일동과 한덕선 담임선생님이 엄지손가락 굵기에 가슴높이까지 자란 낙우송(落羽松·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이 새의 깃털처럼 보인다는 일본식물명을 그대로 번역한 이름) 한 그루를 심으면서 조그마한 기념비에 서로의 믿음을 새겼습니다. 20년 후에 항상 안식처가 되어주는 로뎀나무가 된 이 나무 밑에서 다시 만나자는 내용입니다.

1983년 10월9일 다시모인 선생님과 학생들은 나무의 크기와 굵기를 재고 다시 기념비에 새기면서 20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그리고 2003년 10월3일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을 맞이한 나이로 다시 만난 이들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또 하나의 기념비에 서로의 믿음을 새겼습니다.

지금도 2003년 가을날 수피아여고 교정에 심어진 낙우송 아래의 작은 기념비석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학교숲을 가꾸고자 하는 교사들과 학교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재학생·동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본보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수피아여고에는 낙우송을 비롯해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고향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나무 열매로 보릿고개의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페칸과 흑호두나무, 상수리나무, 멀구슬나무, 가죽나무 등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멀리 이국땅에서 선교의 사명을 띠고 고단한 의료와 교육봉사를 했던 이들의 지친 마음을 나무들이 위로해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집안이나 담장 밖에서 자라는 나무의 모습만을 보고도 그 주인의 성품을 미루어 짐작했다고 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끼치는 정신적·경제적 효과들 때문입니다.

국가나 사회가 한 집안의 인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들 중에 ‘국가의 동량’ ‘사회의 기둥’ ‘집안의 대들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를 ‘꿈나무 동산이나 학원(學園)’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바로 동량지재(棟梁之材)들이 돼야 할 무성한 꿈나무들이 자라는 배움터인 학교를 숲과 같이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수많은 자연물 중에 유독 나무를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살아있는 나무가 지닌 강인함과 품위의 영속성을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짊어지고 갈 인재들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학교에 심어진 나무들을 살펴보면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질 지경입니다.

아늑하고 푸른 녹음의 학교숲을 만들어야 할 터인데 나무들의 가지와 허리부분을 싹둑 잘라 짙푸른 시원함과 사색의 공간을 거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자라나는 것들의 기상을 죽여 볼품없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처량한 신세로 만들고 있는 것이 나무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 학교 교육의 문제라고 말하면 지나친 기우일까요?

학교폭력을 없애고 아이들의 감성지수를 높이겠다는 교육의 화두를 실천하는 의미에서라도 자연을 대표하는 나무를 심어 푸른숲이 우거진 학교를 만드는 일에 당장 나서야 할 것 입니다.

“숲은 살아 있는 교실이고 교과서라는 진리는 변하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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