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수향매실농원’

▲ 야트막한 야산 하나를 매화 꽃잎으로 덮은 `수향매실농원’. <김태성 제공>

매화 꽃잎이 지고 있다. 끝물의 꽃잎이 바람 속으로 날린다. 아득히 날리는 매화 꽃잎을 눈에 담지 못한다면 다시 1년을 섭섭해야 할 일이다. 먼저 꽃을 보고 다시 들과 대면할 요량으로 광양으로 길을 잡는다.

광양은 매화가 가장 아름다운 땅이다. 임권택의 영화 ‘천년학’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동의한다. 매화꽃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물며 아름답게 내리던 날 ‘소화’를 아껴주던 노인이 죽는다. 꽃잎이 만드는 풍경은 영영 이별하는 장면까지도 빛의 색으로 감싼다. 화면을 가득 채운 그 매화 꽃잎이 바로 광양 땅의 것이다.

청매실농원은 너무 유명하다. 사람도 많다. 날리는 꽃잎을 보며 감상에 젖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광양에 들어 길을 살며시 바꾼다. 작은 산 전체에 매화잎이 찬란하다. ‘수향매실농원’이라고 했다. 야트막한 산비탈을 타고 매화 꽃잎이 숲을 이루는데 이제 시작된 봄빛이 아주 깊다. 꽃이 바람을 타고 움직인다. 바람 속에 꽃의 향기가 스며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봄꽃의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바람의 냄새가 꽃의 얼굴을 하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다.

모두가 매화의 꽃잎에 정신에 팔려있는 이 때에 농원의 주인은 부지런하게 매화나무 사이를 오간다. 농부의 손길 속에 시간이 매달려 있다. 엊그제 춘분이 지나갔다. 열매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에게 춘분 무렵은 한 해 농사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밤과 낮의 시간이 같아지고, 땅이 기운이 가장 승한 춘분이 농사짓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춘분 무렵 매화나무 주변에 비료를 뿌려준다. 겨우내 움츠렸던 매화나무에게 새로운 기력을 심어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이 남아있다. 가지치기다. 춘분 날 하루를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정말로 1년의 고된 노역이 모두 헛일이 된다.

가지치기는 나무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이다. 원래의 가지와 새롭게 뻗어 나온 가지 사이에 길을 내줘 영양분의 불필요한 분산을 막는다. 모든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열매가 실하지 못하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지를 잘라 햇볕이 나무에 골고루 퍼지게 하고, 바람이 통할 수 있는 길목을 만들어준다.

“설명하기 어렵다. 가지치기의 비법은 따로 없다. 오로지 순정하게 매화나무를 지켜본 시간이 기술을 알려준다. 꼭 필요한 가지를 남겨두고 필요 없는 가지를 정확히 잘라내야 한다. 그 일을 잘해야 고생이 보람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과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춘분 무렵이 가장 바쁘다.” 수향매실농원장 이형재 씨의 말이다.

바쁜 농부 곁에서 꽃구경이라니, 조금 미안하다. 그러나 삶의 이치이다. 나무가 제 몸을 살피는 시기와 사람이 들로 나가는 시점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마지막 추위를 이기고 매화가 꽃을 피우면 사람은 들로 나선다. 이제 매화 꽃잎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된다. 푸른 기운이 시작되는 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름다움도 결국은 생산의 걸음이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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