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한 영산강의 물이 곧바로 모이는 담양호. 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따스한 봄날, 묘하게 날이 흐리다. 영산강의 숨결도 흐리다. 국토의 작은 물길을 도려내 큰 물길로 연결하는 운하의 개발논리가 강의 숨통을 조인다. 오랫동안 남도의 거친 들을 적셨던 그 강이 지금 바짝 야윈다. 담양에서 첫 흐름을 시작해 남으로 111.5km를 흐르는 강, 그 시작을 보러 담양에 간다.

영산강의 발원은 가마골 용소인데 그 물길이 흐르다가 곧바로 모이는 곳이 있다. 담양호다. 강의 시작에서 나중에 펼쳐질 거대한 흐름을 먼저 본다. 강은 가는 길목 마른 농토를 적시고, 작은 냇물을 끌어 모아 거대한 물길을 만든다. 모든 물기와 몸을 섞으면서 영산강은 그렇게 담양호에서부터 밀려간다.

강의 푸른 물빛 속에는 죽어야 할 것과 살아야 할 것들이 항상 공존한다. 그리하여 그 강의 이쪽과 저쪽에 몸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매일 바닥까지 젖는다. 다슬기를 잡으러 발목을 적시며 젖고, 강물을 퍼서 논물을 대며 젖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아예 담양호 속으로 들어가 젖는다.

담양호는 1976년 9월에 축조된 호수다. 제방길이는 316m이며 높이 46m이다. 저수량은 6670만 톤이다. 사실 인공의 힘이 가미된 이 나라의 다른 댐들과 규모를 비교하면 거대한 호수는 아니다. 그러나 작아서 편안하다. 담양호 물의 쓰임은 영산강과 같다. 그 물은 농업용수이다. 담양의 넓은 평야와 장성군 진원면, 남면까지의 농토를 적셔준다.

담양호는 아름다운 두 개의 산을 품고 있다. 하나는 추월산이고 다른 하나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산성으로 유명한 금성산성이다. 두 산의 슬픈 전설이 담양호에 깃들어 있다. 추월산은 전남의 5대 명산이다. 그림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봉우리가 달과 가깝다. 추월(秋月)이다. 그 산의 끝에 닿으면 영산강의 시간처럼 오래된 절이 하나 있다. 보리암, 광주의 장군 김덕령의 한이 거기 머문다.

김덕령 장군은 추월산에서 무술을 연마했다고 전한다. 그는 1596년 도원수 권율의 명을 받고 이몽학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던 길에 이미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군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이명학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썼다. 옥에 갇혀 20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는 끝내 죽임을 당했다. 슬픔은 겹으로 온다. 김덕령 장군이 죽은 이듬해 부인 흥양 이씨도 보리암에서 순절했다. 왜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한 자결이었다. 부부의 슬픈 한은 추월산의 물길을 따라 흐르다가 담양호에 고인다.

금성산도 한의 역사를 품고 있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크고 가장 견고한 성을 품은 산. 금성산성은 옛사람들의 피 값으로 만들어졌다. 성을 쌓는 일에 동원된 백성들에게는 다섯 가지 고통이 있었다. 그 고통들은 모두 죽음의 다른 이름이다. 성을 쌓던 백성들은 배가 고파서 죽고, 병이 들어서 죽고, 돌에 깔려서 죽고, 한여름 무더위에 죽고, 한겨울 추위에 얼어죽었다. 죽음과 죽음을 딛고 금성산성은 태어났다. 그 죽음은 다시 삶을 만든다. 수많은 전투에서 금성산성은 단단하게 버텼다. 적의 칼은 금성산성을 쉽게 허물지 못했다.

담양호는 흐린 봄날 먹구름을 깔고 묵묵히 슬픈 산들의 그림자를 몸 안에 담고 있다. 물 속에 추월산이 있고 또 금성산이 있다. 아름다운 포용이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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