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박선주

▲ `정글’, 2009년, 잉그레이빙

 작업실은 3층이라고 했다.

 상가건물 1층을 지나고, 2층 영어 학원을 지나고,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3층으로 다가서니 비로소 희미하게 음악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음악소리는 “이 곳이 작가가 있는 곳”이라는 일종의 간판 혹은 문패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청감각으로 안내하는 표식….

 문을 열자 넓고 하얀 공간 안에 긴 앞치마를 두른 박선주 작가가 프레스기를 돌리고 있다. 작업대와 프레스기. 빛나는 금속성의 동판들이 있는 작업실은 작은 공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 판화하면 초등학교 시절 고무판화 밖에 모르는 문외한이 막 판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섬세하고 지난한 과정들

 음악소리는 물러나고 시각적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업대에 놓여진 동판의 표면에는 눈이 아플 정도로 섬세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긴 선들이 현미경 처럼 섬세하고 복잡하다.

 도대체 이런 걸 사람이 하는가 싶다. 시간과 공력의 난이도를 생각하며 ‘예술’하는 사람은 역시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동판에 잉그레이빙이라는 기법을 사용해서 만든 거예요.”

 기자는 ‘잉그레이빙’이라는 단어에 매달려 있는데 에칭, 아쿼틴트, 우드컷…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줄줄이 엮여나온다.

 판화의 기법과 종류는 많았다.

 금속판에 그림을 새기고 산으로 부식시키는 방법도 있고(에칭), 금속판에 송진가루를 뿌린 뒤 부식시켜 미세한 톤 효과를 얻는 기법(아쿼틴트)도 있고, 동판에 바늘로 이미지를 새기는 기법(드라이포인트)도 있다. 그리고 작가가 작업하고 있는 잉그레이빙 기법이 있다. 한참의 부연 설명을 들은 뒤 ‘뷰린’이라는 마름모꼴 칼로 동판의 표면에 모양을 새겨넣는 기법이라는 ‘정리된’ 정보를 얻는다.

 “우리가 쓰는 지폐 있잖아요. 조폐공사에 3~4명의 장인이 있다고 하던데…그게 바로 잉그레이빙 기법으로 제작하는 거예요.”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꺼내보시라. 섬세하면서도 강한 것이 잉그레이빙 기법.

 판화가 다양한 만큼 다양한 방법들로 얻을 수 있는 효과도 다 다르다. 힘차거나 신비스럽거나 명료하거나 몽환적인 효과들은 어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 또한 작가의 재능으로 나타난다.

 

 불같은 열정

 그 안에는 항상 무언가가 끓어 오른다. 억제된 열정과 열망 같은 것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다. 마음에 불꽃같은 것을 느낀다. 가슴이 늘 뜨겁다.

 “제 안에는 항상 뭔가가 끓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직설적이고 도발적이 돼요. 판화는 한 번 더 과정을 거치는 간접 표현이에요. 또 판화는 한 과정이 잘못되면 돌이킬 수가 없어요. 회화와는 마음가짐이 틀린 거죠. 한 번 걸러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저한테 잘 맞는 것이 판화인 것 같아요.”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9개월이 걸린 적도 있다. 책상에 앉아 돋보기와 마름모꼴 칼을 들고 몇 개월씩 새기고 또 새긴다. 동판이 완성됐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동판의 그림이 종이에 실수 없이 잘 옮겨질 때까지의 과정도 반복의 반복이다.

 회화를 전공했고 판화를 부전공했다. 지금보다 더 뜨거웠을 대학 시절, 그는 재능도 있고 욕심도 많았다. 판화를 배우게 된 것도 그의 기질을 숨길 수 없어서였다.

 “시험 때 작품을 제출했어요. 분명히 내가 더 잘한 것 같은데 예비역 선배가 점수를 더 높게 받았어요. 교수님한테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교수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너는 시집 잘 가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화가 나서 공방을 수소문했어요. 친구들 몰래 공방에 다니면서 배웠죠.”

 여성에 대한 공격이었다. 다음 학기 때 그는 A+를 받았다.

 예술은 늘 당연한 무엇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의심없이 한 길을 걸었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예술대학을 나왔다. 대학원을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피카소·달리 등이 작업을 했던 ‘17공방’과 ‘63공방’에서 판화를 공부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실수라도 하면 ‘국제적’으로 창피를 당했지만 행복한 때였다. ‘파리 아메리칸 아카데미’ 석사 과정도 병행했다. 그곳에서 잉그레이빙 기법 즉 뷰린 기법을 배우기도 했다. 잉그레이빙 기법을 완벽하게 구사한 르네상스 시기의 대가 뒤러를 신으로 생각하던 그였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전시를 열었다. 반응도 좋았다. 젊은 예술가의 열정이 절정에 이르렀던 때였다. 그리고 그는 귀국했다. 이제 꽃이 피는 일만 남았다.











 ▲`정글’ 60x100, 2008년, 잉그레이빙

 

 보류된 열정

 그러나 꽃은 보류됐다. 귀국 후 바로 결혼이라는 낯선 세계로 들어섰다. 고향인 광주를 떠나 순천으로 갔다. 삶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렸다. 작업은 멀어져갔다. 두 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짐싸는 꿈을 꾸었다.

 “타고난 것이 있어요. 이글이글거리는 걸 느껴요. 주부로 살아볼까도 했었어요. 무언가를 할 수 있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지옥이 있다면 그건 결혼이지 않을까….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보낸 8년의 시간. 그는 그 8년의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느꼈다. 터질 것 같은 답답함, 우울함, 화가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그러다 그는 상담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집단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는 누구였는지,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지, 나는 왜 힘든지…나를 찾기 위해 나와 만나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자유로워지려면 놔야겠다. 남편도 아이들도 조금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구덩이에서 빠져 나왔다. 내려온 동아줄은 작업이었다. 힘든 시간들이 동판에 섬세하게 새겨졌다. 그의 삶과 생활이 마름모꼴 칼 끝으로 동판에 표현됐다. 최근 작업한 ‘정글’ 시리즈에는 작가 자신이 들어 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얼룩말과 날개 잃은 부엉이와 매혹적인 곤충들이 한데 섞여있는 정글은 그가 살고 있는 세계다.

 “왜 유명한 여성 작가들은 없는 걸까요? 자궁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모성애를 여성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세상에서 그가 던진 생각은 도발적일지도 모르겠다.

 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실비아 플라스…. 자아가 강했던 수 많은 ‘그녀’들이 불화할 수 밖에 없었던 세상은 저 멀리 가버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때의 그 공기가 지금 여기에도 흐른다. 그리고 2009년 작가 박선주는 그 기운들을 다시 작품 속에 채워놓고 있다. 작업실과 집을 오가면서…. 보류된 열정은 현재 진행 중이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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