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박형규

▲ `일상’

 사실은 말이다. 상사에겐 매일 깨지고 각종 고지서에 허리가 휘도록 휘청거려도, 매일 ‘짤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럽게 혹은 더럽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어도…, 매일 나와 마주하는 책상 위 탁상시계가 ‘사실은’ 우주선이고, 거울 앞 손톱깎이가 ‘사실은’ 풍뎅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실적과 성과를 운운하며 오늘도 열을 내고 있는 상사 앞에서 호탕하게 웃어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런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는 상상이 의외로 통쾌하다.

 설치 작가 박형규. 그가 하는 일도 그렇다. 100원 짜리 뽑기 캡슐이 우주선이 되고, 손톱깎이가 나비가 돼 하늘을 난다. 온갖 가전기기의 부품들이 눈과 귀를 얻고, 캐릭터를 얻고, 꿈을 얻고, 사연을 얻는다. 손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조밀한 ‘생명’들이 낯선 지구땅 곳곳을 누빈다.











 

 

 작업실, 낯선 생명체들의 고향

 세탁소 2층에 자리한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두 발’이 어지러운 작업실 바닥에서 착지할 곳을 찾아 분주해진다. 무언가 밟은 것 같은데 혹시 ‘낯선 생명’ 중 하나? 발밑의 너트 하나 전선 하나가 조심스럽다. 라디오, 난방용 히터, 턴테이블, 선풍기, 버려진 핸드폰, 컴퓨터…. 폐 가전제품들이 여기 다 모였다. 각종 전자기판에 좁쌀만한 너트와 볼트까지.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치워놓는건데….” 작가는 그렇게 말했지만 좀 치운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처럼 보이진 않는 작업실 풍경. 이 모든 것들이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재료들이다. 우주선과 손톱깎이 풍뎅이의 고향이다.

 “제가 하는 일은 일종의 의미전환 작업이죠. 오브제가 가지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드는 거죠. 손톱깎이는 우주선이 되기도 하고 개구리가 되기도 해요.”

 벽에 걸린 액자 안에는 손톱깎이가 곤충 표본이 됐다. 순두부 백반에 들어있었을 바지락부터 막걸리 안주로 나왔을 꼬막 껍데기. 심지어 먹고 난 랍스터의 꼬리까지 마치 나비처럼 날개(?)를 펼친 채 액자 안에 걸려있다. 냄비 뚜껑은 시계가 됐다. 작업실을 휘이 둘어보니 ‘의미전환’의 의미가 몸소 다가온다.

 “작업의 재료들은 줍기도 하고, 주변에서 가져다 주기도 해요. 뜯어봐서 재밌는 것이 나오면 좋죠.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것들은 좋아요.”

 폐가전제품들로 가득 찬 탓에 가끔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아닌 것 처럼 돌아 서있는 선풍기는 진짜 선풍기 용도로 쓰였고, 작업실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의 출처는 여러대의 오디오 기기들 중 한대가 아니라 조그만 MP3플레이어였다.

 펼쳐낸 일상의 상상

 “뽑기 기계 아시죠? 동전을 넣으면 캡슐이 나오고 그 캡슐안에 장난감들이 들어있는 거요. 어느날 아이들이 문구점 뽑기 기계 앞에서 캡슐을 발로 밟아 깨고 있는 걸 봤어요. 캡슐이 잘 안 열리거든요. 근데 그 캡슐이 마치 우주선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이들의 발길질이 외계인을 물리치는 발길질 같았어요.”

 그런 식의 상상들이 작품으로 나왔다. 하나 하나 다 내용이 있다.

 손톱만한 크기의 작품들이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 늦어서 미안. 난 이제 막 지구에 도착했어” “외로워. 같이가.”

 들여다 보면 재미있지만 작품 대접(?)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제 작품은 잘 팔리지 않아요. 그럴 듯해 보이지 않잖아요. 비싼 재료가 아니라 버려진 것들을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구요. 아는 선배가 저한테 이야기를 했어요. ‘네 작품은 사람들이 좋아는 하는데, 사지는 않잖아. 투자를 좀 해봐’라고…”

 처음부터 작품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딱 한 번 ‘팔기위해’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동안은 버려진 것들을 재료로 썼지만 큰 마음 먹고 철판을 레이저로 커팅하고 은 도금을 하는 등 공을 들였다.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작품이 됐다. 물론 팔리지도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상’



 손톱만한 작품 크기…“그냥 하고 싶은 작업”

 “가벼워 보이고, 그럴듯 해 보이지 않잖아요. 작가정신을 주문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럴 때 마다 고민스럽긴 하죠.”

 그러나 그는 그게 솔직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포장하기 싫었다.

 “솔직해지고 싶었어요. 전 그냥 재밌게 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제가 평소에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산다면 모를까. 그냥 제 일상 그대로의 연장선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길을 가다 ‘뽑기’기계 앞에서 쓸데없는 공상을 하는… 그런 일상이요.”

 주위에서 좀더 그럴듯한 ‘사이즈’의 작품을 만들어보라 권했어도 “작품이 굳이 커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애초부터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우연히 공모에 당선되면서 전시를 하게 됐다. 초대전이 아니면 전시를 할 이유가 없었다. 개인전에 투자를 하게 되면 쓸데없는 욕심이 생길 것 같았다. 그냥 이것 저것 만드는 것이 재밌고 즐거웠다.

 작업에 대한 강박도 버렸다. ‘피나는 노력’ ‘불꽃같은 투지’ ‘치열한 작가정신’의 수식어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뷰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더 열심히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왜 나를?”이라고 반문했다. 그는 언제라도 작업을 털어버릴 자신이 있다고 했다.

 “재미가 없어지면 나는 그만 할 거예요. 만드는 것이 지겨워지면 미련없이 털 수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하는 다른 작가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그럼에도 작가로 살아온 시간이 10년.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동기들도 하나 둘 작업을 포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떠났다. 강박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에게도 그 10년도 쉽지는 않았을 터.

 “물론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경제적인 문제지만…돈이야 뭐 많이 필요하지도 않는데요. 아르바이트 하면서 지금처럼 하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이기도 한 작가는 매번 전시회 때 마다 이렇게 다짐한 적이 있었다는 고백도 한다.

 “이번 전시회만 하고 이제 돈 벌게.”

 물론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오는 12월에도 전시회가 계획돼 있다.

 “아직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즐거워요. 뭐라고 할까. ‘보람찬 하루 일’을 끝내고 나오는 기분?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오늘도 참 보람있었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참 행복해요.”

 남들이 걱정하고 질타해도 그는 ‘보람차게’ 하루를 끝낸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돈을 벌지 못해도, “계속 그렇게 살거니”라는 잔소리를 들어도 그는 아직까지는 꿋꿋이 ‘보람차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가 하고 있다는 ‘의미전환’의 작업의 정수는 이 대목일지도 모른다. 사물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드는 일. ‘보람’의 의미를 찾기도 전에 소모되고 마는 보통 사람들 한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외친다. “오늘 하루도 보람찼다”고.

 글=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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