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황지영

▲ `미소방(美小房)-오창’ Light-jet C Type print on Metalic silver paper, 125cm×156cm, 2005.

 ‘우린 지금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느냐’의 문제. 이 근본적인 질문은 종종 잊혀지곤 한다. 제어력을 상실한 듯 가속도를 내며 굴러가는 세상은 그 안의 인간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도시는 그렇게 설계됐다. 잔뜩 날이 서 있는 도시.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속도에 대한 적응력과 긴장감일 뿐. 하지만 가끔 균열의 순간이 있다.

 예컨대 황지영의 사진을 보는 것도 그렇다. 5년전 힘들었던 내면의 풍경을 사진 속에 잔뜩 담았던 사진작가 황지영은 그 때 “다음엔 나를 둘러싼 세상에 카메라를 들이댈 생각”이라고 했다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 그냥 그런가보다 지나치는 것들, 소홀히 했던 것들을 사진에 담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말처럼 지금 그가 내보이는 사진들은 균열의 지점에 있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광주 남구 월산동 남부시장 근처에 있다는 작업실. 지도검색 사이트에 대충의 주소를 넣으니 소요시간 21분. 몇백미터 간격으로 최적거리가 안내된다.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지나온 모든 과정이 허공에 떠버렸다. 뇌는 있었으나 사유는 없었고, 눈은 있었으나 본 것은 없었던 21분. 작가가 건네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받고서 비로소 제정신을 차린다.

 그의 사진도 일종의 각성의 효과가 있는 듯 하다. 천연덕스럽게 도심 한 켠에 자리한 익숙한 풍경도 그의 카메라를 통해 나오면 이질적인 무엇이 된다.

 “작업의 큰 모토라고 할까. 사진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 문화적인 상황 들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도시의 건물 벽면에 자리한 대형 선거 현수막, 장식된 백화점 로비,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 그는 요즘 장소들을 쫓는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 건물 외벽 하나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선거 후보의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어요.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이나 세종대왕의 동상처럼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위치에 하나같이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보들의 현수막이 주는 느낌이요. 특정 시기가 되면 전국의 어느곳에서나 비슷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2006년 작업을 했으니 내년 지방선거 때 작업을 마무리 하려고 해요.”

 아무리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도 그것은 어차피 만들어진 이미지. 조작된 이미지들의 홍수 속, 눈이 있다는 이유로 보고 싶지 않아도 속절없이 봐야만 하는 상황 또한 도심의 속성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 또한 작가의 시선을 붙들었다. 늘상 지나쳐 온 그 장소가 어느날 작가에겐 굉장히 낯선 곳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느꼈던 그 생경함이 사진 안에 자리잡았다. 사진을 보는 이 또한 낯선 풍경을 재발견한다.

 푸르고 붉고 노랗고 파란 화려한 나무와 꽃과 장식용 물레방아와 조각상. 살짝 자리한 세면대나 금연 표지 같은 것이 없었다면 화장실인지 모를 공간. 사람도 소음도, 모든 방해요소들을 지우고 온전히 화장실의 구성요소들만 도드라져 보이는 사진 속 화장실은 생경한 장소로 탈바꿈한다.

 “2001년부터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정비가 되기 시작했어요. 한국방문의 해와 월드컵이 계기가 돼 일제히 정비가 된 것이죠.”

 관 주도로 전개된 정비는 꽤나 획일적이었다. 화장실을 채운 장식적 요소들이 비슷했다. 오창, 행담도, 대천, 서산, 여주, 안동, 화성, 군산, 정읍…의 이름이 사진마다 붙었지만 지명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한채 사진 밖을 배회한다.

 “2005년 작업당시만 해도 사진을 보고 화장실이라는 걸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어요. 늘상 다니는 곳이지만 또 자세히 보지는 않는 공간이죠. 자연이 인공의 공간으로 들어온 것이지만 자세히 보면 가짜들도 많아요. 자연을 모방한 시냇물 소리, 꽃 향기를 내는 인공 방향제 같은 대량생산된 요소들로 ‘제시된’ 공간인 셈이죠.”

 어느 도시나 비슷한 풍경. 실종된 개성, 삶의 황폐함을 적절히 감추기 위해 동원되는 다양한 판타지. 우리 시대의 속성이 화장실 안에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식물과 인공물, 또 그것들의 뒤섞인 모습에서, 달콤한 유자향을 품어내는 플라스틱 방향제 냄새가 정말 당황스럽지 않은가?” 그가 사진으로 우리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그의 화장실 사진들은 독특한 긴장감과 힘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거의 구매될 뻔”했는데 사진 속 장소가 화장실임을 알고는 사람들은 발길을 돌렸다. 판타지는 지속되어야 함을 요구받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되겠다.











 ▲`창밖에서’ 中  gelatin silver print, 2004 개인전.

 

 세상을 살아내는 내면의 풍경들

 2004년 그는 아주 내면으로 침잠했다. 삶의 한 시간이 시련으로 다가왔다. 살아갈 의욕을 잃을 만큼의 개인적인 사건들이 그를 힘들게 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그는 어느날 새벽, 창 틈으로 쏟아져 들어온 자동차 불빛에 반응했다. 어둠과 빛이 만들어내는 그 풍경들이 자신의 마음의 풍경 같았다. 방은 거대한 카메라가 됐다. 방에 맺힌 상들을 찍었다. 그 사진들로 그 해 개인전을 열었다. 힘든 시기를 지탱해준 것이 사진이었다.

 사진과는 전혀 다른 전공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뒤늦게 사진학과에 편입했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좋았고, 몸을 움직여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좋았다. 학문으로서의 사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인문학, 건축학, 사회학…잡다하게 책을 읽고 생각하고 안테나를 세웠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삶에 대한 불안감이 주위를 배회한다.

 “몇 년 있으면 마흔이 돼요. 작업도 그렇고, 또 인생을 살면서 온전히 내가 주체가 돼야 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럼에도 가끔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그럴 때 마다 내가 주도권을 쥔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합니다.”

 작업에 대한 조바심 또한 늘 자리한다.

 “나를 훈련시키고 있는 과정이에요. 아예 내 것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실한 자기 것이 있는 것도 아닌 시기가 개인적으로 힘들죠. 빨리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조바심이 들때면, 천천히 하나 하나 밟아 가면 괜찮을 거라고, 너무 급하게 앞서가려 하다보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곤 합니다.”

 여성으로 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소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시적으로 거론할 수 없는 배제 또한 그렇다. 많은 일들은 알음 알음으로 진행되고, 작가는 ‘실력’만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그도 그걸 느낀다. 그럴 때 마다 피로함이 몰려온다.

 “휘둘리거나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잡죠. 신경을 쓰면 쓸 수록 내 에너지가 소진되니까요. 여성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변수 앞에서 흔들리고 싶지 않아요. 정말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진만은 끝까지 가지고 갈 겁니다.”

 작업실 한 켠에는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란 책 한권이 놓여있다. 세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의 내면의 풍경. 치열하고 또 눈물겹다.  황해윤 기자 nabi@g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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