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안정

▲ 2008년 `CYCLE OF 虛’ 작업 중.

햇살 좋던 지난 여름 어느날, 산나물과 푸성귀로 차린 보리밥상을 앞에 두고, 동동주 한잔을 격의없이 권하던 여자의 웃음이 여름날처럼 싱그러웠다. 앳되고 명랑했다. 여자는 생애 가장 푸르른 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 보였다.

 

진한 마스카라, 분장 수준의 화장을 한 여자가 한글이 적힌 종이를 국수발처럼 잘라 먹고 있었다. 꾸역 꾸역. 마스카라는 번지고 표정은 감춰졌던 여자의 시선은 허공을 향했다. 시선은 일방향이었다. 사람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었지만 여자는 앞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존재에 반응하지 않았다. 표정없는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09 개인전 `결필의 상태: 아귀’의 작품 `달콤한 인생’ 앞에 선 작가.



 ‘여자’는 동일인물이었다. 둘 사이의 간극 때문에 연결이 쉽지 않았다. 마을미술프로젝트가 한창이었던 지난 여름 함평잠월미술관에서 만난 안정 작가는 친근했고, 2009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리던 지난 가을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만난 안정 작가는 생경했다. 그 동안 퍼포먼스 아트로 관객들과 자주 만나왔던 젊은 작가 안정. 늘 관객들의 시선 한 가운데 있어 왔다.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이 있기 마련. 작가 안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재는 정주 중이다. 작가는 광주 북구 양산동에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다. 손님(?)맞이 청소를 이틀 동안 강행해야 한다는 작가의 의지로 그를 만나기까지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겸사 겸사 이참에 청소도 하고 잘 됐다”고 했던 작가는 작업실 문을 여는 직전까지 청소를 했다고 했다. 청소는 계기가 생길 때 마다 가끔 하는 ‘바람직한’ 성격이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작업실 벽면은 지금까지 그가 작업했던 사진들이 걸려있다. 커피를 끓여주겠다는 작가를 기다리며 작업실 벽면을 훑는다. 사진 속의 작가는 역시 진한 화장, 표정없는 얼굴이다. 텅빈 눈에 걸려있는 알 수 없는 슬픔…. 다시 커피를 끓이는 작가를 본다. 주방에 번듯한 주전자가 없는 탓에 냄비에 물을 끓이고 국자로 물을 붓는다. 털털한 작가.

 벽면엔 온통 메모가 적힌 종이들이다. ‘한 시간 놀면 반나절이고 반나절을 놀면 하루가 가고 하루를 놀면 이틀이 간다’ ‘어떤 유혹이 와도 놀지 말자’와 같은 채찍질성 문구부터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 일상의 단상들까지…. 생경한 그와 친근한 그가 씨실 날실로 교차된다. 둘은 연결될 것이다.

 

 ▶생경함 : 관음증, 욕망…불편한 퍼포먼스

 그의 퍼포먼스 작업들은 왠지 불편하다. 여러가지 성적인 코드가 녹아 있거나 소유욕과 집착 같은 저 안에 숨겨놓은 우리의 욕망을 건든다. 욕망은 또 결핍의 상실감과 닿아 있다. 여성의 몸을 소재로 많은 것들을 표현하는 작업도 그렇다. 공개된 장소에서 보여지는 몸에는 그것이 퍼포먼스 임에도 여러 종류의 시선들이 얽혀들어간다. 보여지는 몸, 그것을 보는 타자의 시선, 타자의 시선을 보는 또 하나의 시선.

 2006년 ‘SHOP’을 주제로 한 첫번째 개인전에서는 말 그대로 자신을 팔았다. 다방 종업원 차림으로 오토바이 뒤에 타고는 도심을 돌아다니며 ‘전단’을 돌리고 그것을 스틸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다방 아가씨처럼 ‘보이는’ 아티스트에게서 싸구려 광고 전단지처럼 ‘보이는’ 종이를 받고 어리둥절한 남자들의 모습….

 지난 가을 두번째 개인전의 주제는 ‘결핍의 상태; 아귀’. 쇼핑백을 두 손에 가득들고 명품 가방으로 치장한 사진 속의 여자, 꾸역 꾸역 먹을 것을 입안으로 밀어넣는 영상 속의 여자, 세숫대야 한 가득 벌컥벌컥 무엇인가를 마시는 여자…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조바심을 내는 여자들 모두 그가 연기(?)했다. 그로테스크 한 사진과 영상을 보고 전시장을 찾은 아이들은 울기도 했다.

 “퍼포먼스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예요. 하고 싶은대로 하다보면 어떤 공통점이 나오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보이는 거죠. 어떤 분들은 ‘여성적’이라는 단어로 제 작업을 정의하기도 하는데… 내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면들이 드러나는 것이지 의도한 것은 아니예요.”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우리, 채울 수 없는 욕망과 좌절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허기져가는 우리의 모습도 작가와 다르지 않다. 불편함의 순간은 자각의 순간과 일치한다.











 ▲2006년 개인전 `SHOP’ 중.

 

 ▶친근함: 조바심, 떨림

 퍼포먼스를 보는 사람도 그렇지만 사실 퍼포먼스를 하는 그의 상태도 편하지 않다. 항상 떨리고 긴장된다. 진한 화장과 표정없는 얼굴 뒤에 그는 그 떨림을 감추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는 고백이다.

 “ 울렁증이 와요. 그런데 내가 떨고 있다는 걸 들키면 안되요.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요….그런데 많이 들켰을 것 같아….”

 2004년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동시에 실전으로 뛰어들었다. 직접 부딪히고 싶어서 무작정 전시를 했다. 그해 지도교수가 대뜸 그와 그의 친구에게 “퍼포먼스 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친구는 고개를 저었고, 그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는 그해 2004 광주비엔날레 때 생애 처음으로 1시간 동안 퍼포먼스를 했다. 떨렸고 조바심이 났다. 첫 경험 치고는 무대가 컸다.

 “그 때 영상을 함께 활용해 퍼포먼스를 했어요. 프로젝터를 통해서 내 모습들이 배경이 되고 그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식이었죠. 평소에 내가 느끼는 생각들을 퍼포먼스와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를 계기로 퍼포먼스 작업을 하게 됐어요.”

 원래 조각을 전공했던 그였다.

 “예전엔 질료의 문제만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단순히 그런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흥성, 일회성, 관객과의 관계 등에서 더 다른 표현의 방법들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적극적으로 퍼포먼스 아트의 세계를 찾아 다녔다. 각종 퍼포먼스 페스티벌을 찾아다녔다. 생각보다 이벤트적인 요소가 강해 실망한 적도 있고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했다.

 무표정하게 보였던 그의 시야에도 사람들의 반응들이 들어온다. 관객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느낄 수는 있을 거예요. 내 퍼포먼스를 보고 위안이 되거나 발전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퍼포먼스 작가로 알려졌지만 설치 작업도 병행한다. 설치나 퍼포먼스나 영상이나 모두 표현의 방법일 뿐, 어느 한 곳에 묶일 생각은 없다.

 

 ▶당신과 나의 모습

 “혼자 있는 게 너무 싫어요.”

 먹을 것을 꾸역꾸역 집어넣는 작품 속 작가처럼, 그는 혼자있으면 공허하고 허기지다고 했다. 외롭다고도 했다.

 “누구나 공허하고 외롭지 않나?”라는 우문. 그렇다면 도대체 공허함과 외로움의 실체는 무얼까.

 “앞만 보고 달리는 시기여서 그럴까요? 조급하고 다급한 마음 때문에 그럴까요?”

 “어렸을 때 식구들이랑 함께 밥을 먹었던 때가 충만하고 행복했던 때”라고 느낀다고 했다. 고향에서 혼자 나와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젊음은 더이상 충만하고 행복하지 않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요. 아르바이트도 정확하지 않고. 팔리는 작품과 내 작업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하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나를 관찰하기도 하고…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으니까요.”

 씨줄과 날줄은 겹쳐진다. 우리 모두 같은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중이다. 작가는 퍼포먼스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우리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보고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30대 중후반이 되면 덜 불안해지지 않을까요?”묻는 작가. 답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평생 외롭고 허기질 것이다.

 진한 화장의 여자가 말을 건넨다. 앳된 얼굴의 여자가 말을 건넨다. 외롭고 허기진 ‘우리’는 그의 말에 귀기울인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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