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라

 지난 5월22일 일요일 봉하마을은 입구부터 북새통이다. 길게 늘어선 차량들 그리고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사람들, 평소에는 조금만 밀려도 짜증을 내던 동행자는 “더 많이 밀렸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나라당과 연정을 제안했을 때,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했던 한미 FTA협정을 체결했을 때, 대통령에서 물러나 박연차 사건에 휘말렸을 때도 무작정 노짱을 욕하면 핏대를 올리며 대변했던 그인지라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추모제에 참석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게다. 노짱이 농사를 지었던 논에는 써래가 휘저어 온통 흙탕물이다. 사람들이 걷다가 노짱의 집이 가까워지자 달리기 시작한다. 아이를 무등 태운 아빠, 머리를 빡빡 깎은 스님,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우리들도 덩달아 달린다. 보고 싶은 마음에, 때 묻고 얼룩진 마음들을 씻어내기 위해서다. 어서가자, 어서 가, 어서 가서 경쟁과 연대, 성장과 균형이 모두 함께 가고, 성공한 사람이 존경받고 낙오한 사람들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한 그와 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 자유를, 평화를, 나눔을 노래하며 춤을 추자.

 길가 노란 바람개비가 반긴다. 바람개비는 바람이 불면 바람이 시키는 대로 돌다가 바람이 그치면 그친다. 바람이 불면 돌고 바람이 그치면 그대로 멈추는 바람개비는 누굴까? 동행자는 시민이라고 한다. 노짱이 국정의 기조를 분배에 두고 정책을 추진했을 때 우리 힘없는 시민들은 온몸으로 반기며 그 바람이 시키는 대로 돌았다. 노공이 보수언론인 조·중·동의 거대한 산을 옮기려 했을 때 바람개비는 열렬히 그를 위해 돌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훈풍은 불지 않고 경쟁과 억압의 바람만 불어댄다. 그래서 아프다.

 배옥주 시인은 바람개비가 있는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돌담위에서 바람개비가 피어나고 있다. 겨우내 언 몸에서 터져 나오는 개나리 눈부신 환희처럼 파르르~ 파르르 바람을 흔드는 봄날의 자세 안구 건조증에 맺힌 눈물은 왜? 노란색일까? 골목을 지나 들녘으로 한 남자의 모습이 걸어가는데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다. 우~우~우~ 미완의 혁명처럼>

 우리들에 대장 그의 무덤에는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다. 돌덩이들이 바닥을 덮고 있다. 왜일까?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다시 복원시켜서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의 무덤에는 왜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을까? 그는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도 사분오열되어 서로를 질시하고 반목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생취의(捨生取義) 정신을 말하면서 허허벌판 광야로 달려가 밭을 일구려 자랄 수 있게 모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일행은 차안에서 각자의 소감을 애기했다. 백운동에 사는 후배가 말문을 연다. “진즉 한번 와 보고 싶었는데 소원을 풀었다. 이 곳에 와서 느낀 점은 올바로 살아야겠다”는 종합적인 결론을 냈다. 오늘에 주동자 유 선생은 “다 좋았는데 생가를 원형 보존하지 않고 다시 지은 것”을 지적했다. “몇 년 전 방문했을 때는 슬레이트 지붕과 가는 기둥들이 그의 어릴 적의 생활을 대변해주어 실감이 났는데 흔적도 없이 헐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지은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한다. 유 선생을 따라온 홍 선생도 너무 감격해 할말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행복했다. 그래서 노짱이 애창했던 상록수를 불렀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헤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끝내~ 이기고야 말리라.

 민판기<(사)금계고전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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