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 “찍어 봐”

 좀 어렵다. 아니지, 가끔 머리에 쥐나고, 해석 불가일 때도 있다. 그 사람이 써낸 영화평들 말이다. 근데 묘하다. 문장이 사람을 강하게 빨아들이는데, 한 번 빠져들면 발목을 빼내기 어렵다. 영화를 완전한 하나의 사유 체계로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의 영화평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무수한 인용들이 난무하고,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졌다가, 문장이 겹으로 꺾인다. 접속사도 없고, 늘 단문이다.

 문장들은 배열을 끝내는 순간 강한 칼끝으로 변한다. 아주 간혹 칭송의 문장을 만나게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나쁜 영화’(개인적 취향과 관점에 의한)에 대한 혹평이다. 관객 꽤나 모은다는 감독들도 그의 문장이 이룩한 도마 위로 오르면 대책이 없다. 완전히 뼈와 살이 분리돼 나중에는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증발해 버린다. 벌거벗은 몸의 완전한 해부다. 그런 평을 읽는 순간 만든 감독의 심정이란, 참 아득하겠다.

 이 나라에서 영화에 대한 글발로는 항상 정점에 섰던 그 사람, 정성일(52)이 어느 날 직접 영화를 만드는 길로 나섰다. 그는 이미 ‘카페느와르’를 찍었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 물론 영화평과 아주 이별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지치지 않는 글발을 과시한다.

 문제는 그에게로 향하는 시선이다. 영화평으로 이미 악명(?)의 일가를 이룬 사람이 어느 날 초짜 감독으로 나섰을 때, “어디 네가 만든 영화는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고 이를 갈며 벼르는 사람이 어디 한둘로 끝이겠는가. 그는 영화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이다. 그에 대한 평가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왜 부담스러울 거라 생각하지?”

 사실 그는 어떤 부담도 없다. 영화는 찍는 자의 몫이 따로 있고, 보는 자의 평가 역시 다르다. 봤다면 누구나 평가를 날릴 자격이 있다. 평가의 좋고 나쁨은 아주 사소한 문제다. 그는 역으로 “내가 부담스러울 거라 생각하는 게 나에 대한 편견이지 않을까?”라고 반문을 던진다. 이 지점에서 정성일과 삶의 행로가 닮은 프랑소와 트뤼포의 말을 빌려올 필요가 있겠다. 트뤼포가 말하길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고, 마지막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꽂히는 영화는 100번이고 돌려본다. 영화에 관한 글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고, 남은 것이 만드는 작업이었다. 지금껏 그는 몇 편쯤의 영화를 봤을까? 본인도 잘 모른다. 스무 살 무렵까지는 본 영화들의 목록을 정리했다. 그 때까지만 2000편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영화를 쓰는 행위를 업으로 선택했고, 스물의 시절로부터 30년이 더 지났다. 수량의 정리는 무의미하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심한 과장이겠지만 실제로 그가 써낸 글들을 읽고 있으면 그런 의혹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수한 인용들은 막대한 독서량과 연결돼 있고, 그가 보지 않은 영화는 세상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 그는 내부로부터 철저한 삶을 살았다.

 “원칙이 하나 있다. 군대에 있을 때 맹세한 건데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페이지 이상은 반드시 책을 읽는다. 하루에 한 가지 글을 단상이건 장문이건 무조건 쓸 것이며 일주일에 세 편 이상의 영화는 하늘이 무너져도 보는 게 나와의 약속이다. 받아들인 것들을 스스로 중재하고, 내가 표류하지 않으려면 지켜져야 할 약속이다.”

 

 정성일이 임권택을 말하다

 정성일의 삶은 임권택 감독과 같은 흐름 안에 놓여있다. 그는 임권택의 작업 안에서 살아있음의 진실을 본다. 둘은 정성일이 스물일곱이던 해에 만났다. 25년을 이어온 인연인데 그 사이 그는 임권택이 만든 모든 영화를 봤고, 촬영현장에서도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그 결과물로 2003년에는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를 냈다. 임권택 감독과의 대담을 묶은 것인데 젊은 영화평론가가 노장 감독에게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헌사였다.

 왜 임권택이었을까? 사실 스물일곱 때 임권택 감독을 처음 만나게 된 연유가 책으로 만들기 위한 인터뷰였다. 둘은 금방 경계를 풀었고, 북악산의 한 모텔에서 12박13일 동안 묻고 답했다. 젊은 정성일은 노장 감독에게서 배신하지 않는 영화에 대한 질긴 사랑을 읽어냈다. 영화란 것이 개인이 아닌 모두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였던 것이다.

 “한국영화의 가장 큰 비극은 가장 나이 많은 현역 감독이 가장 실험적인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은 늘 자신의 세계를 전체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끊임없이 한계를 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성숙시키고, 새로운 문제들을 끌어안았고, 늘 새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임권택 이후로 나는 그런 감독을 본 적이 없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는 임 감독님이 영화적 삶으로 던진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임 감독님의 뭔가를 훔쳐내고 싶을 때 가져갈 수 있는 도구상자로 책을 활용하기를 소망한다.”

 냉정한 평론가는 이 나라 최고의 영화를 꼽는 데 일각의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다. 그의 관점에서는 답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인데, 그 영화가 바로 임권택의 ‘춘향뎐’이다. 500년을 살아있는 이야기, 남도의 흥, 서늘하거나 저린 한, 소리로 이룩한 영화문법, 온갖 시련을 몸으로 감내한 남도 사람들, 고향에 대한 노장 감독의 애착. 이 모든 것들이 ‘춘향뎐’에는 담겨 있었다. 정성일은 ‘춘향뎐’ 앞에서 많이 감격했고, 지금도 여전히 감동하고 있다.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임권택이다.

 

 “한국영화, 많이 위험하다”

 ‘아바타’가 해일처럼 전 세계를 덮쳤다. 조금 더 선명하게 설명하자면 3D영화라는 혁신적인 발명품이 이미지의 환각상태를 만들었다. 현란한 열광의 시간 속에서 놓친 질문이 하나 있다. 과연 아바타는 창조적인 예술품일까? 정성일은 ‘아바타’가 보여주는 테크놀로지의 경이 앞에서 영화의 자리가 축소되는 것을 고민한다. 기술 그 자체보다는 자본의 위력을 걱정한다는 것이 옳겠다.

 “영화를 예술로 만든 것은 그 기술적 한계 때문이다. 지금 영화는 자기를 예술로 만든 한계를 무효로 만드는 도전에 열중하고 있다. ‘아바타’는 분명하게 말한다. 영화의 핵심은 미학이 아니라 돈이라고. 3D 기술은 결국 돈의 산물이고, 물신주의의 성공에 대한 열망을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화가 ‘아바타’다.”

 그러니까 정성일이 걱정하는 것은 획일주의에 따른 독과점이다. ‘아바타’의 성공은 이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제작자들이 모든 영화를 ‘아바타’처럼 만들기를 바라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현란한 경이의 기술을 더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승리할 것이다. 결국 수많은 극장들도 3D영화 전용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 것이다. 이견이 없다. 3D영화관은 관람료가 두 배다. 단지 안경 하나 빌려주고 수익은 두 배인데, 돈 되는 사업을 마다할 자본은 세상에 없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미 돈 되는 3D영화에 ‘올인’을 결정했다. 거의 모든 예산(80억 원)을 3D영화 육성에 쏟아 붓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더 이상 저예산 영화들이 살아남을 통로가 이 나라에는 없다. 영화 다양성의 소멸, 영화미학의 사형선고, 블록버스터만 살아남는 암흑의 시대가 멀지 않은 것이다.

 그는 말한다. “기술 결정주의 영화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본은 무섭다. 영화의 길은 여러 갈래인데 어느 하나에 전부를 걸면 나머지는 모두 말라죽는다. ‘아바타’는 자본의 공습을 알리는 신호다. 장담컨대 한국영화가 많이 위험해질 것이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아바타’의 열광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찬사와 근심의 미래로부터 간극 지어진 실제의 제자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글=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35mm@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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