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 영화 ‘클로젯’.
 한국영화는 공포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하지만 쉼 없이 제작되는 한국의 공포영화들은 그 결과물들이 신통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빼어난 공포영화를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단순히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효과음을 남발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공포의 감정은 특수한 감정이기에 세심한 연출을 필요로 하고,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소재와 내용이 참신할 필요도 있는데, 익숙한 장면과 설정이 반복된다면 관객들을 사로잡기란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공포영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공포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숙명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클로젯’은 온갖 공포영화들의 설정과 장면을 가져다가 한 편의 영화 속에 전시했을 뿐, ‘새로움’과는 거리가 먼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클로젯’은 집 안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그리고 있는 ‘하우스 호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는 것을 염두에 둔 선택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집안의 벽장을 활용하고 있는데, 벽장 안에 살며 아이들을 잡아가는 서양의 귀신인 ‘부기맨’을 참고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이 영화는 동양적인 소재인 무속신앙을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 악마나 귀신을 쫓아내거나 물리쳐서 없애는 사람인 퇴마사를 등장시키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계’(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경계)와 ‘어둑시니’(이계에 존재하는 영혼들)와 같은 공포영화의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렇듯 ‘클로젯’은 공포영화의 온갖 소재와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전체적으로 ‘클리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클리셰는 영화 초반부터 발견된다. 상원(하정우)과 이나(허율) 부녀가 새로 살게 될 집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게 되는 죽은 개와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까마귀 떼는 상투적이고, 집에 도착한 상원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을 때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 받는 새의 이미지 역시 알프레드 히치콕의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들 역시 진부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나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도 그렇고, 낡은 인형에 집착하고 있는 설정, 2층의 딸 방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와 비명소리를 아빠가 듣게 된다는 일련의 장면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렇듯 ‘클로젯’은 관객들의 기대치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온갖 클리셰들이 연속해서 등장하고 있고, 이 익숙한 재료들을 조화롭게 합하여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고 음향 스태프였던 감독의 데뷔작답게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음향효과로 관객들의 귀를 자극시키고 있는 것 역시 과유불급이긴 마찬가지다.

놀래키는 사운드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귀신 등 점프 스케어를 곳곳에 집어넣어 공포감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이 영화의 노력은 자주 반복되다 보니 효과가 반감된다.

 공포효과를 전시했던 ‘클로젯’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메시지를 끼워 넣는다. 방치, 학대로 인해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살핌과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 역시 주도면밀하게 준비되지 못한 관계로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이런 전반적인 이유로 하정우와 김남길이 연기하고 있는 인물들 역시 빛을 발하지 못한다. 하정우와 김남길은 자신이 맡은 배역들을 소화하고는 있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클로젯’은 공포영화를 잘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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