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목구멍 쓸어내리는 깔끔한 물맛
매실장아찌·신김치 등 정성 가득한 밑반찬

 석곡 87번 시내버스가 더운 바람을 훅훅 몰고 온다. 들녘엔 시퍼런 밥풀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길가의 백일홍은 달아오른 열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숨고르기와 목마름 해소를 위해 분토마을 정안사로 향했다. 마을 안쪽의 정안사에는 용천수가 있다. 큼직한 소 여물통처럼 생긴 우물가에서 꿀렁꿀렁 소리가 나도록 마셨다. 대웅전 앞 다소곳한 연꽃에서 발소리를 가다듬었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사각거리는 자갈소리는 스님의 헛기침 소리처럼 들렸다. 아쉬운 듯 물바가지를 한 번 더 입으로 가져가는데, 여기 저기 바위에 얹혀있는 파란 물바가지에서 “여보시게, 그만 마시고 일어서게”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드르륵거리는 엔진소리에 창문밀치는 소리가 들리고, 경내 관리인의 가엾은 눈길은 불청객의 발길을 재촉케 했다. 한 길에는 불볕더위를 예고하는 듯, 여기저기 차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신촌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지척의 4수원지와 논바닥을 가르는 전봇대의 전선들이 부옇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 곳 청풍동은 ‘깊은 산골로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무돌 주막이 있는 신촌마을은 덕봉산 자락의 등촌마을 아래에 새롭게 생겨난 마을이라 해서 신촌이라 했다고 한다.

 주막 앞마당을 들어서니, 무돌 농부들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무대가 보인다. 혓바닥을 연신 들랑날랑 숨가쁘게 헐떡이는 진돗개? 진순이와 게으른 진삼이가 일행을 맞는다. 텃밭에는 무궁화꽃·봉숭아꽃·분꽃이 피어있고, 붉은 보랏빛이 감도는 가지고추가 지지대에 달려있다. 막걸리 통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윤즉슨, 땅 속 두더지가 작물의 뿌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오~호, 이 곳 두더지는 빈 막걸리 통으로도 살 떨리는 효능을 톡톡히 보고 있다니….

 무돌 저잣거리 맑은 술을 주문했다. 밀짚모자를 엇비슷하게 눌러 쓴 쥔장이 지나간다. 얼굴이 다소 거무튀튀하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등산 동호인으로 보이는 일행이 좌식테이블에 앉고, 한 가족은 무등을 이고 사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판화 작품 아래에 앉았다. 식당 내부의 사방 벽면에는 뭇 취객들이 흘린 글씨들이 빼곡하다. 짚불오겹살을 굽는 앞쪽 테이블에선 백주에 막걸리 잔이 바쁘게 오고 간다.

 “웠다메, 문 모시기도 왔고, 모 의장도 왔서라. 대표니 뭐니 될 사람도 사진에 있네. 사람 사는 세상을 부르짖는 이도 왔는데, 요즘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워째 이 모양인고. 야야, 근디 요즘 그 뭐시냐 싸드라고 허는 것이 텔레비에 자주 나오는디, 술 맛 좋기로 소문난 청풍골에 그 숭악한 것이 놓인다고 생각해 보면, 그 참외골 사람들의 심란한 심사를 이해하고도 남제. 안 그런가?”

 “글씨, 고것이 국가적인 사업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떠들어대니, 걱정스럽소. 죽으라고 하면 가만히 앉아서 죽거니 하고 있겄소! 땅 파 묵고 사는 사람들 건드려 봤자, 본전치기도 못할 일이제. 봤소? 동네 노인분이 ‘I am sorry’ 하면서 내는 미국 사람이라고 외치며, 모 방송사를 묵사발 내는 장면을. 요즘 시골 사람들도 알건 다 알고, 할 말하는 사람들이라 무시하면 큰 코 다치제. 고기 굽는지가 언젠디, 아직도 덜익었다냐, 속타네. 언능 맑은 술이나 한잔 걸치세.”

 ‘무돌 저잣거리’의 첫 느낌은 깔끔한 물맛도 나고, 콧구멍과 목구멍을 쓸어내리는 맛이다. 두어 잔을 걸치면 액면대로 진한 맛이 찾아온다. 기본 반찬으로 멸치무침과 고추장으로 절인 매실짱아찌, 시원한 양파짱아찌, 고사리와 신김치, 그리고 배와 호박, 무가 뒤섞인 나박김치가 나왔다. 정성이 담긴 밑반찬은 무돌 주막의 넉넉한 인심이다. 인근 마을에서 공수해온 두툼하게 썬 따뜻한 두부는 퍽퍽하지 않고 부들부들 떨어지는 속 깊은 맛이다. 오징어, 파, 감자, 호박, 홍고추, 청고추, 당근이 들어간 야채전은 두텁게 부쳐져 달작지근하면서 기름기의 걸죽한 맛까지 고소하게 착착 감겨온다. 곁들여 나온 고추장 양념장과 진간장, 그리고 부추·쑥갓·상추·열무와 어울리는 고추·마늘·된장·젓갈의 조화로운 차림새는 청풍골 주막의 센스와 소박함을 돋보인다. 식초와 맑은 물이 가미된 진간장에 찍어 먹는 두부와 청양고추에 녹아난 양념장과 어울리는 야채전, 여름철 푸성귀가 경이롭게 입 안에 맴도는 이 완전체는 저잣거리 맑은 술이 있어 빛나는 맛의 향연이다.

 마을 입구의 애국지사의 공훈비를 지나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냈다는 400년 된 느티나무에서 잠시 붉은 낯빛을 추스르고, 누정이 있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구름과 바람을 삼켜버린 석곡천에 터를 잡은 균산정의 앞마당은 허옇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담벼락에 힘겨운 몸을 가누고 있는 백일홍과 그 사이에 놓인 작은 석상들이 의연하다. “이 땅을 묵힐 수 없고, 이 물을 폐할 수 없다”는 신촌마을의 학당에는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진흙 바닥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 참 맛있는 집에 들러 마음에 품은 생각들을 내려놓고 간다. 여기가 무릉도원입네 했던 사람들 속에서, 소나기와 먹구름이 쉬어가는 무돌 주막에서, 나무와 달, 흙벽과 돌무지, 달구새끼가 춤추는 신촌마을에서, 한 잔 먹새나 그려.

△차 림 : 짚불오겹살 13,000원(1인분), 야채전 13,000원, 두부8,000원, 김치찌개/된장찌개/굴떡국(겨울) 7,000원, 청풍무돌동동주 5,000원

△주 소 : 광주광역시 북구 신촌샛강길 120-5(청풍동 856-1)

△연락처 : 062)266-6086

글·사진=장원익<남도향토음식박물관학예연구사>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