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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0·26 단상
안중근 장군 독립 거사하고
유신 심장에 총탄 박힌 그날
서울 공화국 수장 결정된다
비정한 보수, `박정희 딸’에 선거 지원 요청
이병완
기사 게재일 : 2011-10-24 06:00:00
 10·26이 다가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 근·현대사에 큰 의미를 지닌 두 날이 있다. 우선 잊지 못할 10·26은 1909년의 이날이다. 중국 하얼빈 역에서 7발의 총성이 동양의 하늘을 갈랐다. 러시아 재무상과 열차회담을 마치고 나와 러시아군의 사열을 받던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3발의 총알이 날아갔다.

 조선의 아들 안중근의 오른 손엔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권총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을사늑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을 무너뜨린 조선 초대통감출신 이토를 향한 분노의 총알이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외친 평화주의자였다. 안중근은 조선침탈을 시작으로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원흉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지목하고 그를 제거한 것이다.

 안중근은 일제에 체포된 뒤 포로로 취급해달라고 외쳤다. 그는 일제와 전쟁을 벌인 독립국가 대한제국의 군인임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조선을 지키기 위한 독립전쟁을 수행 중이었다. 안중근은 이미 대한의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으로 무장의병을 이끌고 북만주 일대에서 일제 군대와 무장투쟁을 전개했었고, 전투 중 붙잡은 일본군을 포로취급하며 만국법에 따라 대우하고 석방하기도 했다. 그는 마음속에 대한제국의 군인임을 다짐하고 있었고, 그래서 적의 우두머리를 향해 권총을 쏘았다.

 안중근의 전쟁은 당장은 패배로 끝났으나 조선독립투쟁의 봉화가 되었고, 끝내는 일본제국주의의 패망과 조국해방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나는 안중근의 많은 면모 가운데 참된 군인의 모습을 기리고 싶다. 그래서 안중근을 `의사’가 아닌 `장군’으로 부르고 싶다. 안중근 장군이야말로 조국을 지키는 군인의 참모습을 보여주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을 던진 진정한 군인의 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군의 원형을 안중근 장군에서 찾고 싶다. 임진왜란의 수많은 선비출신 의병장은 물론이고 일제강점기 무장독립투쟁을 빛낸 의병장들이 모두 장군으로 불리고 있는데 안중근을 `의사’가 아닌 장군으로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안중근의 총탄과 김재규의 총탄

 1979년의 10·26이 있다. 청와대 옆 궁정동 안가의 10·26이다. 밀실에서 울린 총성은 어둠에 묻혔다. 다음날 새벽에도 요란한 탱크의 캐터필러 굉음에 영문 모른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유신독재가 막을 내린 총성이었다. 주군으로 모시던 대통령 박정희를 쏜 김재규는 `유신의 심장을 향해 야수의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다. 김재규는 70년 전 안중근의 10·26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의거라고도 했다. 김재규는 가족들에게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정복에 중장 계급장을 붙여 달라’고 했다고 한다.

 문득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바로 전 해까지 대한의병중장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던 안중근 장군이 조선침략 원흉의 심장을 향해 총을 쏘았고 포로취급을 요구했던 1909년의 그날과 오버랩 된다.

 1979년의 김재규는 과연 안중근 장군을 의식했던 것일까. 망상(妄想)이고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김재규는 군인의 길을 버리고 이미 독재의 동업자로 군림하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유신독재의 전성기인 76년부터 중앙정보부장으로 궁정동 밀실의 공동운영자가 아니었던가.

 안중근 장군에게서 찾고자하는 참된 군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살을 에는 북만주 벌판에서 독립과 애족, 그리고 동양평화를 위해 일제와 무력전을 벌이고, 마침내 조선침략의 원흉을 쓰러뜨리고 30살의 나이에 순국한 안중근 장군을 들먹였던 자체가 안중근 장군에 대한 모독이다.

 결국 현대사의 무신란으로 이어졌음은 12·12, 5·17쿠데타가 보여준다. 김재규의 총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다. 그래서 더욱 안중근 의사가 아닌 안중근 장군으로 부르고 싶다.

 

 시민들이여 주권행사 총탄을 쏴라

 이제 며칠 뒤로 우리 현대사에 기록될 새로운 10·26이 다가온다. 서울시민의 총탄이 승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총탄이 소리 없는 투표용지라는 점이다. 총탄을 많이 맞을수록 승리한다는 점이다. 주권행사라는 총탄이기 때문이다.

 관심은 시민주권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해온 무소속 후보가 과연 사상 최초로 서울공화국의 수장이 될 것인지 여부이다. 또 하나의 관심은 최초로 서울공화국의 여성수장이 탄생할 지의 여부다. 두 가지 모두 한국정치사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게 분명하다.

 무소속 후보가 된다면 우리 정치의 두 기둥인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정치적 변혁의 파도를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무소속 후보가 승리하는 것은 시민들이 난사한 실제총탄이 두 당을 향해 퍼부어진 결과나 다름없을 것이다.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시민 혁명이다.

 여성 후보가 승리한다면 우리나라도 여성대통령시대를 예고하는 가늠자가 될 수도 있다. 이른바 보수 세력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적 조류와는 상관없이 보수적인 가부장적 관행과 행태가 여전한 우리사회가 여성을 서울시장으로 뽑을 정도의 보수 세력의 속성과 결집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진보를 굳이 좌파나 심지어는 빨갱이로 매도하는 한나라당의 한 가지 사례가 우리사회나 정치권에 포진한 이른바 보수 세력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박근혜 의원을 10·26 선거전에 기어코 투입시킨 일이다. 10·26이 박 의원에게 어떤 날인가. 보수적 관념으로 생각한다면 차마 박 의원에겐 지원요청도, 권유도 안했어야 옳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선거 승리가 중요하고 `선거의 여왕’의 투입이 급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박한 보수적 사고가 아닐까.

 역사적 인식이나 평가를 떠나 10·26 이라는 비극적 가족사를 생각한다면 참 비정하다. 잔인하다.

이병완 www.wanlee.net



 이병완님은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박정희의나라, 김대중의나라, 그리고 노무현의 나라>를 썼으며 지금은 광주광역시 서구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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