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열광 시대에 올드미디어 종편이라니

 ‘나꼼수’열풍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현실정치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신랄하고 날선 풍자가 ‘나꼼수’라는 소통의 방식이다. 기존의 구도화된 소통방식(신문·방송 등)을 벗어난 괴상한(?) 파격적 소통방식이 순식간에 열풍처럼 번진 것은 새로운 정보기술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정보소통 기술이 널리 보급되었더라도 그 새 정보기술에 맞는 창조적인 문화상품이 나오지 않으면 열풍 같은 현상은 이루어 질 수 없다.

 ‘나는 꼼수다’라는 일종의 인터넷 라디오(팟 캐스트)가 유독 한국에서 젊은 세대를 넘어 이제는 40·50대에 이르기까지 관심과 화제, 때로는 열광을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사회가 그만큼 새로운 소통방식에 목말라있었다는 증거다. 소통방식이 아니라 소통 그 자체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 할 것 같다. 대중이 신문이나 방송·통신 등에서 듣고 싶은 것은 듣지 못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하는 불만을 ‘나꼼수’라는 방식을 통해 해소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선풍적 인기몰이를 한 이유도 비슷하다고 본다. 그동안 이른바 10대와 20대 초반의 아이돌 가수들에 의해 점령되었던 가요계에 남진·나훈아·조용필 등의 노래를 새로운 감각과 해석, 창법으로 선보이자 대중들은 열광했다. 가요프로그램의 파격적 변화가 대중의 목마름을 해소시켰다. 가요프로그램의 새로운 소통방식인 셈이다.

 ‘나가수’를 통해 늙은(?)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점이나, ‘나꼼수’를 통해 김어준·김용민·주진우·정봉주등 듣도 보도 못했던(?) 인물들이 대중의 스타로 등장해 수만 명의 반정권주의자들을 얼어붙은 여의도 광장에 끌어 모은 것도 비슷하다.

 ‘나꼼수’와 ‘나가수’현상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을 생각해본다. 대통령의 주례연설은 원래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시대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라디오를 통한 노변정담형식에서 비롯되었다. 경제적 대공황으로 파국을 맞은 미국인들은 매일매일 좌절과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고, 공장과 농촌이 빈사상태로 수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굶주림과 실직의 고통에 빠져있었다. 루스벨트는 이때 라디오를 통해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방향을 난롯가에서 정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소통방식이었다. 또 그 당시엔 신문 중심의 매체시대에서 라디오가 새로운 정보기술로 보급되었던 시대였다. 미국인들은 새로운 희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루스벨트는 정치적 반대파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뉴딜정책을 밀고 나갔다. 한마디로 루스벨트는 라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뉴 미디어)에 주목했고, 뉴미디어에 맞는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였다. 뉴미디어에 맞다는 것은 시대적 변화와 혁신에 과감했다는 뜻이다. 루스벨트는 이를 정치의 요체인 소통의 방식에 재빨리 적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예를 찾을 수 있다. 바로 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던 과정에서 과감하고 새로운 소통방식이 도입되었다. 바로 텔레비전을 통한 ‘국민과의 대화’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하기 직전 당선자 신분으로 첫 국민과의 대화를 했고, 취임 후 바로 두 번째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주제는 역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결의와 방향을 제시하고, 대화라는 격의 없는 TV생중계 형식으로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했다. 금모으기 운동 등 외환위기의 극복과정은 바로 이 같은 과감한 소통방식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스벨트시대의 뉴미디어가 라디오였다면 김대중시대의 뉴미디어는 바로 텔레비전이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 가지 예를 추가한다면 2002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의 노무현 열풍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노풍’은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가 작동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국민참여경선)에 인터넷을 통한 선거인단 모집이 주효했던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는 인터넷 세대들이 대거 참여했던 것. 당시 국내의 인터넷 보급률은 45% 수준으로 미국(20%수준) 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국민의 정부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보기술(IT)과 벤처산업에 집중 투자한 결과였다. 노무현 후보가 모든 정치적 열세를 극복하고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나,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뉴미디어를 과감히 받아들이고 이를 소통수단으로 활용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정설이다.

 뉴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전개되는 현상은 시대적 조류이고 문화현상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소통구조이며, 일방적이 아닌 쌍방향의 소통이다. 높아진 대중의 지식과 지성,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높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배려와 진정성, 무엇보다 진실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어떤 뉴미디어도 참된 소통방식이 될 수는 없다. 참된 소통은 뉴미디어 시대의 민주주의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일부에서 아이디어로 내놓았던 라디오 주례연설안을 채택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뉴미디어에 대한 적응과 수용, 그리고 과감한 활용은 변화와 혁신의 철학, 활용자와 참여자의 진정성이 없으면 이루어 질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은 미디어 관점에서 본다면 뉴미디어를 멀리하고 일부 신문과 방송 등 올드미디어에 매달려 온 점이 확연하다. 소통 부족, 소통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이 정권 아래서 화두가 되었다. 12월1일부터 조·중·동이 시작한 종편방송이 시작 되었다. 종편방송의 미래를 섣불리 예단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종편방송은 뉴미디어가 아니라 올드미디어라는 점이다.

 뉴미디어의 파고 앞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문산업의 조종이 울린 지 이미 오래전이다. 공중파방송 등 종합방송시대의 위기도 이미 수년전부터 예고돼왔다. 올드미디어에 대한 정권적 특혜와 천문학적 투자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대한민국의 미래가 시험에 들고 있다. ‘나꼼수’ ‘나가수’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 복판에서 우리는 올드미디어의 대량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안 해도 망하고, 하면 빨리 망한다’ 고 말했다는 어느 신문사 사주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이병완 www.wanle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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