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스미스 지음 / 문학동네
“책으로는 뭘 할 수 있어?”

 오래 전 후배녀석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그 텔레비전에는 `타임머신’이라는 기능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이런 기능이다. 박지성이 패널티킥을 찬다. 그 순간, 텔레비전을 보던 아버지와 아들이 화면을 멈춘다. “아빤 오른쪽, 난 왼쪽” 그렇게 내기를 거는데, 문제는 그 화면이 생방송이란 거다. 후배는 미치게 궁금했다. 저렇게 생방송을 멈추고 1분을 정지시켜 놓았다면 사라진 1분은 어디로 간 것일까? 패널티킥 직전에 멈춰진 박지성의 뒤통수, 화면은 멈춰 있었지만 축구는 계속되었을 터. 리모컨으로 `화면으로 복귀’를 누른 시청자는 어느 1분을 도둑맞은 것일까? 1분씩 늦는 생방송, 드라마도, 영화도 우리의 사고 밖에서 마구 흘러간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과 달리,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읽다가 잠시 쉬어 머리도 굴리고, 기쁘고 슬플 때 하늘도 한번 쳐다보고...그래도 화면이 변하지 않고, 저혼자 앞서가지 않고, 묵묵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저 예쁜 것...책! 책! 책을 읽읍시다. 라고.

 책 좋아하는 인간들은 저런 순간까지도 책하고 연관 짓는다고 놀렸지만 많이 공감했다. 스마트한 시대에, 컴퓨터와 전자책이 아이들을 사로잡는 시대에, 과연 종이책의 존재는 무엇일까? 이런 현실을 익살스럽고 재치있게 보여주는 <그래, 책이야!>가 생각난 이유다.

 동키가 책 읽기에 빠져 있는 몽키에게 묻는다. “그건 뭐야?” “책이야.” “스크롤은 어떻게 해?” “스크롤 안 해. 이건 책이거든.” “그걸로 블로그 해?” “아니, 책이잖아.” “마우스는 어디 있어? 게임할 수 있어? 메일 보낼 수 있어? 트위터는? 와이파이는? 이렇게 (멋진 소리 나게) 할 수 있어?” 라고 잇달아 묻지만 몽키는 담담하게 `아니’라고 할 뿐. 그러다 동키 앞으로 자기가 읽고 있던 페이지를 바싹 들이밀어 보여준다. “봐 봐.”

 몽키가 열독하고 있던 <보물섬>의 한 대목을 읽은 동키는 글자가 왜 이렇게 많냐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 이모티콘으로 정리해 보인다. 몽키는 답답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으로는 뭘 할 수 있어? 비밀번호 있어야 해? 별명이 있어야 해?” 컴퓨터가 하는 건 아무것도 못하는 책. 동키는 그런 책을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몽키가 신기하다. 몽키는 결국 동키에게 책을 빼앗기고 만다. 마치 샤를마뉴 대왕에게 알킨 사서가 책을 빼앗기는 것처럼.

 도대체 책이 뭘까? 동키가 책을 읽는 동안 머리 위에 놓인 시계의 움직임과 시시각각 변하는 동키의 표정은 독자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몽키가 자기 책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이번엔 동키가 `아니’라고 대꾸한다. 이 책의 진짜 압권은 “걱정 마. 다 보면 충전해 놓을게” 동키가 말하자 “충전할 필요 없어. 책이니까.” 대답하는 장면이다.

 끝까지 읽고 나서도, 내용을 송두리째 다 가지고 나서도,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다시 채워놓지 않아도 되는 것! 책이란 끝없이 소모되고도 결코 소진되지 않는다는 사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의 힘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책 한 권! 기발한 상상력이 유쾌하다.

정봉남 <아이숲어린이도서관장>

 정봉남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주인 되는 영토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오래 걸었고, 결국 아이가 주인인 `아이숲어린이도서관’을 엄마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의 꿈속에 고래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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