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정의, `퍼블릭 디펜더’의 매력
제네바 IBJ, 라오스 법무성 관리 훈련 프로그램 책임
연계에 안내자 역할…인도차이나 생생정보에 그들 열광

▲ `퍼블릭 디펜더’로 활약중인 변호사들, 켈리 크레이크(왼쪽)와 라리사 딘스무어 웨이크필드(오른쪽). 가운데는 서유진 선생이다.

 여행 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는 사실 책을 써도 두툼할 만큼 많다. 지난 13년 간에 걸쳐 주로 동남아를 내 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녔으니 결코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동남아 하면 소위 `후진’ 나라들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 `후진’ 나라가 과연 어떠한 나라인지 한 번 따져 볼까? 진짜 `후진’ 나라는 기어를 후진(後進)에 넣고 선진(先進)을 외치는 나라가 `후진’ 나라다.

 차가 앞으로 나가려면 기어를 선진에 넣어야 하는데 후진에 기어를 넣고 `앞으로’를 외치는 나라가 있다. 다른 것은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별로 `쪽팔릴’ 게 없이 잘 나가는데, 정치판은 후져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바로 이명박 정권이 입만 벌리면 `선진화’를 외치면서 사실상 하는 일들은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하기 때문이다.

 우선 `후진’나라에 대한 개념 정리는 이 정도 해두고 최근에 경험한 일부터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스위스의 제네바에 있는 정의구현 단체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라오스의 수도 `비엔치엔’에서 라오스 중앙정부 법무성 관리<주로 판·검사 변호사 그리고 법 집행관들인 경찰 고위간부 및 군 법무관계 고위관리>를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위해 왔는데, 내가 제네바에서 그 팀으로부터 초대받았다.

 주로 법률 분야에서 일하는 율사들의 프로젝트에 왜 내가 초대 되었냐고?

 작년 초 `비엔치엔’에 왔을 때 이곳 유일한 영자신문인 Vientiane Times 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법무성 고위관리가 사회정의 구현 문제에 대해 법무성 직원들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자체내에서 교육을 시킬 만한 인적자원이 없다는 것이다.


 누가 `후진’ 나라인가

 결국 그 고위 관리가 내놓은 결론은 라오스에 적대적이 아닌 국가의 도움을 받을 용의가 있다였고, 이를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바로 내가 잘 알고 있는 제네바 단체의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에게 그 기사를 보내고 작업을 하도록 제의했다.

 그들은 지난 1년 동안 라오스 법무성 관리들과 접촉, 라오스 실정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프로그램 진행비에 드는 자금을 조성해 라오스 법무성과 계약에 성공해 프로그램 설명회를 하기 위해 왔다.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일뿐아니라, 인근 인도차이나 국가에 대한 정황에 대해 브리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책임자의 요청으로 이들과 합류를 하게 된 것이다.

 인도차이나 국가란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세 나라를 일컫는데, 모두 프랑스로부터 100년 가까이 식민 통치를 받은 나라들이다. 프랑스가 세 국가를 정복하고 통치하는 데 국가 이름을 따로 부를 것 없이, 인도차이나로 부르면서 인도차이나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독립 후 식민통치를 받았던 다른 나라처럼 내전에 휩싸이게 되는 데, 베트남전 종식과 함께 베트남과 라오스는 공산당이 집권하는 공산당 일당 체제 국가가 되었고, 내전이 극심했던 캄보디아만 UN 통치를 받고 일당이 아닌 다당제 체제로 한다는 UN과의 약속에 따라 현지인에게 넘겨져 오늘의 캄보디아가 된 것이다.

 공산당 일당 체제이든 미얀마 같은 군사독재 체제이든 독재국가들은 우선 인권이나 자유 또는 민주주의라는 말만 나오면 우선 긴장한다. 이런 국가에 가서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건 볏짚 들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이러한 나라들도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아닌 `정의’의 깃발을 들고 가면 별 저항 없이 입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네바에 있는 단체가 적격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만일 내가 그 기사를 보고 오랫동안 일을 같이 해왔던 홍콩의 `아시아인권위원회’를 생각했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 별종 변호사 인도차이나에 눈 돌려

 아무튼 제네바에서 온 팀은 프로그램 책임자이자 인솔자인 오랜 지인을 빼고는 모두 나를 처음 보지만 마치 영웅처럼 대해주었다. 이미 제네바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기 때문이겠지만, 사실상 내가 한 일이라곤 아이디어 제공뿐이었다.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법대 교수 1명, 미국에서 `Public Defender’로 돈 없는 인생들을 변호하는 여 변호사 2명, 호주에서 온 남 변호사 1명, 그리고 싱가포르 남 변호사 1명과 책임자를 포함 6명이 팀으로 왔다. 나의 현지 정황에 대한 브리핑이 끝나자 그들은 열광했다.

 법대 교수 왈, 여태껏 자기가 들어왔던 인도차이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접한 것은 처음이고, 나의 이야기는 바로 살아 있는 생생한 정보로 프로그램 과정에서 중요한 도움이 되겠다고 극찬했다. 내가 한 이야기라는 건 그저 내가 지난날 헤매고 다니면서 보고, 현지인이나 여행객으로부터 듣고, 내가 체험한 일들 뿐이었는데…. 내가 신문이나 책에서 본 이야기를 전했다면 그들이 결코 저리 흥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일이 끝나면 한 잔 같이 하자는 젊은 여 변호사, 아니 그들은 법으로 무장한 법정의 여전사들 제의를 받고 아니 즐거울 수 있는가?

 미국에서 Public Defender라고 하면 변호사 중에서도 별종들로 치부된다. 돈보다 정의를 구현하는 데 그들의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이 `퍼블릭 디펜더’다.”(Public Defender is the best job in the world.)

 “우리가 최고로 좋은 이야기를 다 가지고 있다.” (We have the best stories in the world.)

 그래 그 불쌍한 인간들을 변호하며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겠으며, 그러한 직업을 최고로 알고 있는 법정의 여전사들이라니….

 한국에도 이런 멋쟁이들이 있을까?

 내가 한 마디하자 그 전사들은 또 열광했다. “정의를 먼저 보여다오. 그럼 난 좌파건 우파건 상관없다.” (Show me the justice, then I don't care Left or Right.)

 그런데다 소위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나라에서(뭐 지금은 사정이 달라지긴 했지만) 왔는데 이런 소위 `후진’나라에 미친다?

 모두 라오스에 처음 왔는데 다시 오고 싶다고 난리다. 마치 해방구처럼 온갖 행색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싸구려 배낭객들을 보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그들이 왜 미칠까?

 촌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비엔치엔에서 서유진 서유진 eeugenesoh@gmail.com

서유진 님은 10여 년 동안 정글을 누비고 다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스리랑카·인도·태국·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민중에게 5·18광주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진 10년 간이 그가 `5·18의 아시아 전도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기간이다. 현재도 동남아에 머물며 각 나라의 민중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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