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한옥마을 풍경.

 뼈처럼 야윈 나무가 안스러운 겨울 산천. 삼남사녀 농사하나로 키워낸, 국 씨 할매 세상 뜬 일 말고는 별 변고 없이 동네도 새해벽두다. 이 심심산골에 한옥 한 채 짓고 이사 온지 벌써 열손가락 꼽을 날도 머지않았다. 그동안 주변에 신축 건물들이 늘고, 주말별장들도 더러 생기고 그랬는데 한옥 건축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거 같아 쓸쓸할 따름이다.

 창마다 이중창으로 방비하고 현관도 밖으로 따로 빼서 찬바람을 단단히 막았건만 외풍은 피할 수 없는 겨울손님. 비닐을 사서 또닥또닥 안팎 단속을 하고, 아궁이 난로에 장작개비도 부지런하게 집어넣으면 공장 굴뚝만큼 호호 입김이 피어오르지는 않는다. 한옥살이 적당한 불편이야말로 먼지 낀 내 영혼을 털고 씻기며 바로 세워준다. 게다가 논두렁 밭두렁 지나온 바람이라서 친밀하기조차 하다. 의사 벗님들의 말에 따르면 적당한 외풍이 건강에도 좋다 하더라. 시람이 숨을 쉬듯 집도 숨을 쉬어야 옳을 것이다. 갓 태어난 별들이 첨벙거리면서 물놀이를 즐기는 은하수, 하늘방죽에 물이 넘쳐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처마 끝으로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도 얼마나 그윽한 풍경이던가. 외풍조차 반가운 집, 한옥은 우리 겨레가 자자손손 바라고 보존해야할 주거 양식이렷다.

 어제 저녁 지인의 작은 노래 공연이 있어 전주 한옥마을에 일박이일 다녀왔다. 유서 깊은 찻집 골방에서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잤는데, 적당한 외풍까지 반갑고 고마웠다. 창호지로 새어 든 햇살에 간질거려 눈을 가만히 떴을 땐 알람시계가 맘껏 울리고 난 뒤끝. `한옥체험 민박’이라는 현수막들로 도배된 동네는 외딴 변두리 시골도 아니고 도심 복판이었다. 원형 그대로 보존되길 바랐던 분들의 안타까움도 있겠지만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아파트 상가촌이 들어오지 않음만도 감격할 일이었다. 노년층보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한옥 골목. 길게 늘어선 온갖 종류의 찻집과 조르라니 진열된 토속 관광 상품들, 방학을 맞아 전국에서 찾아온 여행자들로 가게마다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얼기설기 거미줄처럼 난리였을 전깃줄과 전봇대가 땅속으로 묻히자 바람은 잘게 잘리지 않고 평화롭게 나부끼고 있었다. 그 골목 풍경이 참말 부러웠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주거환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늘 우리 도시 풍경은 너무도 삭막하고 각박하기 짝이 없다. 그곳에서 한설삭풍 이 추운 날 민소매 반팔 차림으로 겨울을 나는 걸 자랑삼지 말아야 그나마 양심이 살아 있는 삶이겠다. 석유와 핵 시설로 지구별을 달구면 달굴수록 우리 아이들 미래는 암암할 따름이니까. 칸칸이 막힌 채 소통불가 이기심을 부풀려야만 `수월하고 우월하게’ 생존하는 그 속의 `별난 체험’들이야말로 진정 `이색 체험’이 아니겠는가. 낮은 담장,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도심 속의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주민들 서로가 교감체감 보살피며 숨통을 틔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기와지붕 한옥이 언덕배기에 출렁거리고, 낮은 집들을 감싸 안은 낮은 어루만짐, 그런 정치와 문화로 민생이 안정된다면 좋겠다. 하늘을 찌르는 국적불명의 뾰족 건축물과 저렴한 조립형 날림집들로 도시를 꽉꽉 채운들 수수만년 우리를 반기던 고향집 한옥이 머리에서 잊혀 질까나. 저만의 특성화 사업이 아니라는 점, 인접 시군의 관광지도를 따로 그려주어야 하는 중심도시로서의 양보와 배려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제는 100만이 훌쩍 넘는 도시 위상에 걸맞은 더욱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과하고 웅장하게 전개할 계획일랑 접고, 도심 복판 한 구역을 확보하여 비좁고 짧은 거리일지라도 정겨운 한옥마을과 아기자기한 찻집 거리가 생겨난다면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겠다. 임의진 shodance@hanmail.net

 임의진 님은 목사, 시인. `마중물’이란 시로 처음 알려졌으며, `참꽃 피는 마을’등 여러 책을 펴냈고, `여행자의 노래’를 비롯한 음반도 종종 펴내고 있다. 남녘교회 목사로 10년 동안 지내다가 고요히 살고 싶어서 담양 산골에 낮게 은거했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에 칼럼을 연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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