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화 글 / 대교출판
“한 사람이라도 다가와주면 좋겠어”

 예전엔 학교종이 땡땡땡, 지금은 학교종이 퍽퍽퍽, 머잖아 학교종이 탕탕탕, 결코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왕따를 생각할 때, 우리는 수많은 두려움과 슬픔에 직면한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밖에는 달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방법이 없었던 어린 목숨들에게 정말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 요새 애들은 왜 그런지 모른다고 혀를 차며 걱정하는 어른들, 어쩌면 현상적으로만 왕따 문제를 재단해 버린 건 아닌지 걱정된다.

 법과 공권력은 색다른 학교폭력이 일어날 때마다 호들갑을 떨 뿐 몇 가지 법적인 장치를 도입하는 것으로 끝난다. 학교폭력을 `사건’으로 다룰 뿐 `관계’ 문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 채 흥미위주로 폭력 자체만을 부각시키는 글들은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해피엔딩 일색의 결론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우리는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과연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십대들을 위한 소설 `지독한 장난’은 여기에 답한다. 왕따의 가해자, 방관자, 피해자의 모습을 동등한 무게로 다룬다. 어느 날 갑자기 왕따의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되어 버린 준서, 그를 왕따로 만든 가해자 강민, 그리고 준서와 강민을 내버려 둔 방관자 아이들을 상징하는 성원이, 작가는 세 아이들을 번갈아가며 화자로 등장시켜 왕따 문제에는 영원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준서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강민의 뜻대로 왕따 혜진이를 나서서 괴롭힌다. 그러나 체육대회 농구시합을 준비하다가 강민의 눈밖에 난 준서는 혜진에 이어 왕따가 되고 만다. 하루아침에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된 준서는 힘있는 애들의 친구였다가 장난감으로 전락한다. 장난감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화를 낸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공유하며 음모를 꾸미고 인터넷을 통해 지독한 장난을 즐긴다. 괴롭히는 애는 하나지만 그것을 즐기는 애들은 다수다. “한 사람이라도 다가와주면 좋겠어. 그러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을 텐데. 애들한테 두들겨 맞아도 위로해줄 한 사람이 있다면 맞는 것도 괜찮아.”준서의 말, “한 명의 희생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야말로 다수가 우정을 확인하는 때다. 그 희생자가 자신만 아니면 된다. 누구여도 상관없다.”는 강민의 말, “이건 힘있는 아이들의 지독한 장난에 불과하다. 장난감이 되지 않으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성원의 말에서 대상이 바뀔 뿐 이는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왕따는 잔인한 괴롭힘과 폭력 행사로 이어지지만 실제는 장난처럼 포장되어 있고, 여전히 장난처럼 반복된다. 따돌림은 한 인간의 전인격을 흔들며 가여운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래도 연극은 계속된다. 자신들의 거짓과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센 척’하고 싶어서 가식적인 언행을 계속한다.

 일상의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생존방식은 눈물겹다. 부모의 인정, 불평등한 대우, 가난한 가정환경, 만족스럽지 못한 외모, 개발되지 않은 재능을 잃어버린 점수라 생각하여 그 억울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노의 화살을 밖으로 돌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부메랑을 쉬지 않고 쏘아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통찰력을 지닌 책 한 권에서 문제해결의 `희망’을 읽는다. 정봉남 <아이숲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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