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어둠 틈탄
서구의 광기 `섬뜩’

▲ 캄보디아 학교의 모습.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비록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안주해 있는 사람이라 해도 `세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진리를 알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가 요즘처럼 빠른 시대에 특히 나이든 층은 젊은 층보다 둔감하기 마련이다.

 내 시대를 돌이켜 보면 대학은 차치하고라도 초중고등학교 시절 단 한순간도 내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스스로 주체가 돼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 무엇을 하든 집에서는 부보님,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지침을 받아 시키는 대로 해야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선생님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돼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나중에 그 사회 주류에 입문할 수 있다고 세뇌됐던 나의 옛 시절은 불행하게도 현재도 진행형인 것 같다. 바로 내가 살았던 그 시절의 가치관에 내 새끼도 우겨넣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집에선 부모님께, 학교에선 선생님께, 사회에 나와선 직장 상사에게 매사 허락을 받아야 하는, 즉 시키는 대로 하고 살면 되는 세상에서 너무도 오래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날 눈 떠보니 날벼락 같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강조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도 자유롭게 해서는 안 되던 세상에서 갑자기 경쟁력과 효율성이 화두가 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창의력 개발 학원에 아이들을 몰아 넣고 있다. 획일적인 운영 시스템을 가진 기업에선 창의력 개발 연수회까지 열고 있다.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교육과 훈련해서 나오는가?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누가 죽였는가

 창의력과 상상력은 인생 초기, 즉 초등학교에 들어가 글자를 배우고 셈을 배울 때 본능적으로 발동하는 호기심과 함께 폭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조적인 교육 관리자들에 의해 무참하게 억압되고, 모두 하나가 돼야 하는 획일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배자들이 통제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너는 왜 그렇게 창의성도 없고, 너같은 놈에게 상상력을 기대하는 건 마치 매마른 자갈밭에서 콩나물 키우는 거나 다름 없으니…” 하면서 혀를 차며 되레 주눅을 들게 하고,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곤 한다.

 `왜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늘어 놓고 있나?’하면,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드리워진 현상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아시아인들이 수세기에 걸쳐 서구인들에게 그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했는지를 보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의 시각은 결코 변한 게 없다.

 관의 눈으로 본 국민은 통제와 교육의 대상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이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관리들이 어떻게 하면 쉬운 것도 어렵게 만들어 급행료 받을 꺼리를 만드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후진 국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지금도 진행형이다.

 도대체 있어서는 안될 천인공노할 대량 학살, 대량 실종, 고문의 흔적은 아시아 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이 모두 국가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가공할 폭력을 휘두른 자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이들이 단죄되지 않는 상황에 분노하지 않는 한 가공할 폭력은 되풀이될 것이다.

 광주의 5·18 정신을 계승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문명을 위한다는 명분의 `반문명’

 한국은 아시아인에게 의식개혁을 할 수 있는 많은 텍스트를 갖고 있는 나라로 생각되는데, 이명박 정부의 출현으로 다시 어둠의 심연으로 들어갔으니, 그 참담한 심정을 누가 이해할까?

 1901년 `조셉 콘라드’가 쓴 `Heart of Darkness’(암흑의 핵심)는 19세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 통치할 때 한 이상가에 의해 확산된 논리인데, 흑인들은 애시당초 인류문명에 도움이 안 되는 짐승이나 다름없는 종자로 치부한 것이다. 그 논리에 현혹된 유럽인들의 광기가 콩고에서 시작됐다.

 눈에 보이는 흑인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사냥하듯 총으로 죽이고 칼로 토막 내 죽이는 장면을 저자가 목격한다. 그리고 문명을 위한다는 이름 하에 가장 반문명적인 행위를 하는 상황을 바로 `Heart of Darkness’라고 표현했고, 그것을 소설화했다. 내가 프놈펜에 처음 왔을때 유럽인이 경영하는 술집 이름이 바로 `Heart of Darkness’였다.

 아니 어쩜 그렇게 당시 캄보디아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맞는 이름을 술집 간판으로 썼을까?

 천성적으로 잔인한 서구인의 광기가 아프리카뿐 아니라 자신들이 지배하던 아시아에서도 자행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이러한 것을 내가 언제 어디서 배웠겠는가? 여행에서 얻어지는 별미는 이런 것 말고도 많다.

  캄보디아에서=서유진 eeugenes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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