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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와 호랑이
임의진
기사 게재일 : 2012-02-06 06:00:00
▲ 경쟁적으로 산 정상까지 연결된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지자체들. 위태로운 지리산. <광주드림 자료사진>

 중 고딩 아이들의 등하교길 옷차림을 볼라치면 모 상표를 붙인 등산복을 하나같이 겉옷으로 걸치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 누가 그 거무튀튀한 웃옷을 처음 입기 시작했는지 참말 궁금하기 짝이 없다. 나아가 이젠 한 술 더 떠 청장년, 노년층까지 모두 등산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개 치는 일색이다. 등산복이 외출복이 된 나라. 잠깐의 유행이겠거니 싶었는데 멈출 기색이 도통 안 보인다. 이른바 아웃도어 시장의 부피는 장난이 아니게 비대해졌고 그 장사판도 명품과 중저가, 가짜 상품까지 옥신각신 어지러운 모양이다.

 등산복을 즐겨 입는 분들이라 해서 패션 취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게 보통사람들의 일상복이 된 오늘, 문화평론가들은 전반적이고 국가적인 패션 수준의 하락을 염려한다. 옷 입는 수고, 옷을 고르는 센스 따위 필요 없이 등산복에 등산화 하나 장만하면 바깥나들이가 수월한 건 사실이다. 편리함의 추구는 현대 물질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만만찮은 쾌락이지만 모든 쾌락이 그러하듯 상응하는 어두움의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고를 것도 없이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어딜 가든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그 획일화된 편리함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우리 정신세계 깊숙이 어떤 사단을 내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

 지자체마다 온갖 관광 상품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시절이다. 다투어 어쩌고저쩌고 이름 지은 산책로, 등반로들이 생겨나고 있다. 고즈넉하니 아름답던 오솔길을 트럭이 다닐만한 대로로 변경하고 있다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오르막엔 친절하게도 방수목 나무를 깐 계단이 늘고 있다. 차라리 에스켈레이터를 설치하지 그랬나 싶다. 오만가지 등산모임에서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개들 오줌누듯 영역표시를 한 제비꼬리는 한심하게 펄럭거린다.

 나를 비롯 산아래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가장 괴로운 경우는 땅값을 물어보는 저들의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해야 하는 일이다. 살 것도 아니면서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 그놈의 땅값 궁금증이다.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면사무소 옆 멀쩡하게 영업중인 부동산 가게는 멋으로 있단 말인가.

 지역경제에 어느 짬 도움이 되고 있는 수치가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환경파괴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인간 양심의 배수진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그 호젓하고 멋드러진 산 길을 거닐 수 있음은 누군가 그 길을 목숨걸고 지켜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엔 호랑이와 나무꾼이 지켰고 지금은 산골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이 지키고 있다.

 그런데 높고 큰 산, 그러니까 국립공원을 껴안고 있는 지자체는 통째로 정신 줄을 놓아버린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경쟁적으로 산 정상까지 연결된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단다. 빙벽으로 가득찬 알프스 같은 얼음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의 화산이나 황산 같은 바윗덩어리로 쌓아진 험산준령도 아닌, 뒷산 정도에다가 놀이시설을 만들겠단 수작들이다. 케이블카는 한마디로 어른들을 위한 오락 공간, 유흥 시설이다. 아이들 놀이동산 말고 이제 어른들 놀이동산을 달란 생떼인 게다. 예를 들어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다음차례는 전국의 모든 국립공원이 될 것이고, 마침내 도립공원에 솟은 산봉우리도 모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목소리가 늘어갈 게 불 보듯 뻔한 이치.

 대체 우리 강산을 지키는 호랑이는 어디갔단 말인가. 호랑이가 물어가도 시원찮을 악인들이 이다지도 많은 시절에…금수강산 범골마다 살던 호랑이. 산은 호랑이가 알아서 척척 지켜냈다. 귀염둥이 반달곰 가족, 밤마다 우우우 우는 늑대, 이야기 속 구미호 여우도 깊은 산속 옹달샘을 먹고 살았다. 심마니는 응달진 너럭바위 밑에서 산삼을 캤고, 그래 부모님 병구완하던 효자를 기쁘게 하였겠지. 하지만 요즘 세상은 딴판이다. 등산복의 나라에선 쉽게 등산복 하나로 외출복을 차려입듯 손 안대고 코를 풀듯 수월하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싶어 한다. 산신령님은 서양 하나님 기세에 꺽여 숨죽여 사는 형편이고, 모든 산짐승들은 산을 떠나 동물원에 갇힌 신세다. 허리 아픈 분, 다리 아픈 분, 장애인 친구도 산꼭대기를 밟아볼 수 있는 기회를 케이블카가 안겨 주리란다. 눈물이 나는 사랑과 애민의식이 아닐 수 없구나.

 잘 보존한 자연, 산허리, 산봉우리가 영원한 자산이요 재물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고향 선산을 팔아먹는 악다귀들의 꼬드김에 절대 넘어가지 말 일이다. 히말라야라고 하더라도 높은 산 정상에 오른(그분들 말로 탈환한, 정복한) 사람들을 대장이라 높여 부르며 존경하고 흠모하는 문화 또한 없어져야 한다. 겸손한 사람들의 산, 그런 자세로 바라보고 오르는 산, 조그만 샛길 하나면 충분하다.

 일부 등산인의 편리욕망, 등산복의 편리욕망, 나아가 현대인의 편리욕망은 이제 이 땅에서 호랑이를 멸종시켜놓은 것도 모자라 산꼭대기까지 시멘트를 바르고 철골구조물을 바벨탑처럼 세우겠단다. 어디가나 장삿속…경제살리기 타령, 지긋지긋해.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잘 지켜낸 자연산천만이 우리 자자손손 대대로 먹여 살릴 보물임을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임의진(시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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