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기차’
사키 글, 알바 마리나 리베라 그림 / 뜨인돌어린이

 초등 6학년 여자아이 셋을 데리고 기차를 탔다. ‘이쁜이들의 졸업여행’이었다. 여자아이 셋이 모이니 접시가 깨지는 건 당연지사, 까르르 까르르 숨넘어가게 웃어대는 모습은 흐뭇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우리만 전세내고 가는 처지가 아니니 옆 사람들 방해 안 되게 눈치껏 조용히 시켜야만 했는데, 이럴 때 특효약은 들릴락말락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느라 꾹꾹대다가도 재미난 이야기를 만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한다. 그 모습 그대로 생기있고 예쁘다.

 까불던 아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이야기’들은 어느새 마음에 집을 짓고 먼 훗날 추억을 끄집어낼 때 같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을까? 마치 ‘이야기 기차’의 한 장면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기차’는 비좁은 기차 안, 객실이 답답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세 아이들의 소동을 가라앉히려고 아이들의 보호자인 여인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게 된 신사가 각각 들려주는 착한 소녀 이야기다.

 “옛날에 한 소녀가 살았는데, 착한 심성과 모범적인 행동 때문에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래서 소녀가 성난 황소에게 쫓기고 있을 때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소녀를 구해주었다.” 여인이 꺼낸 이야기는 싱겁고 따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 아이가 착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구해주지 않았을 거란 말이에요?” 난감한 질문에 궁색한 변명을 찾는 여인의 이야기.

 반면 신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달랐다. ‘엄청나게 착한 아이 베르타’가 ‘심하게 착했던 것’을 후회하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신사에게 질문하고 신사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이들은 돼지들이 꽃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궁전을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처음엔 시시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이 재미있었어요.” “이제껏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특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어요.” 아이들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아이들 교육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이야기군요.” 여인의 떨떠름한 반응. “뭐 어쨌든 10분 동안은 아이들을 얌전하게 만들어 놓았잖아요?”

 ‘무조건 착해져라’ 외치는 이야기와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를 되묻는 이야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이야기의 비밀에 한걸음 다가선다. 우리를 두근거리게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리 근사한 말로 가득하더라도 재미가 없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야기라는 것은 원래 듣는 사람의 생각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 법. 신사의 이야기는 더 생각하고 싶은, 자꾸만 궁금해지는 생명이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 책은 영국 작가 사키가 1914년에 쓴 단편 ‘The Storyteller’를 그림책으로 엮은 것으로 교훈만 가득한 이야기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 시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가 뭘까? 어린이의 교육을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의 장정도 개성만점. 기차 모양의 케이스 창문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창을 통해서 이야기 속 인물들이 보인다. 케이스에서 책을 빼는 순간부터 ‘이야기 기차’의 승객이 되는 경험, 신선하고 재미있다.



 정봉남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주인 되는 영토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오래 걸었습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의 꿈속에 고래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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