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글 / 북폴리오

 생각이 복잡할 때는 단지 걷기만 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걸으면 마음의 검불들이 걷어내지기 때문일까? 자꾸 ‘걷다’보면 ‘걷어낸’ 것들의 자리에 바람과 햇살이 머물다 가는 것을 느낀다.

 1박 2일을 꼬박 걸어 1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 <밤의 피크닉> 덕분에 잠시 따사로웠던 걷기의 추억을 떠올렸다. “읽기는 정말 힘든데요, 읽고나면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 절친 삼고 싶어요.”하고 아이들은 한결 같이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역시 그랬다. 만만치 않은 분량에 다양한 인물들의 이름을 헷갈리지 않으려고 관계도까지 그려가며 읽어야 했는데, 잔잔한 감동이 밀려와 가슴이 뻐근했다.

 남녀공학인 북고(北高)에서는 연례행사로 '보행제(步行祭)'가 열린다. 밤을 새워 80킬로미터를 걷는 고교생활 마지막 이벤트, 아침 8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학교로 돌아오는 행사다. 일상과 비일상,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물네 시간. 각자 깊이 묻어둔 마음의 비밀들이 밤의 피크닉을 통해 빗장을 푼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이야기, 단체사진마다 등장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이 귀신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낙태한 다른 학교 여학생을 임신시킨 남자를 찾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면서 시시콜콜한 즐거움을 주면서도 무게중심은 이복형제라는 비밀을 안고 끙끙대는 다카코와 도오루에게로 건너간다. 어린 날의 떨림과 반짝거림, 가볍게 들떠 있다가도 곧 무겁게 가라앉곤 하는 10대 시절의 공기가 예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내밀한 마음의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밤시간, 예민한 감성의 아이들은 세상과 자신을 열린 눈으로 마주한다.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모든 것의 끝이 언제나 시작과 닿아 있음을, 지금을 미래를 위해서만 쓸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밤새 가슴에 맺힌 것들을 풀고 고백하고 화해하는 주인공들과 마치 하룻밤 보행제를 함께 치른 것 같은 탈진감도 새로운 책읽기 경험이 될 것이다.

 인디언 속담에 ‘친구란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자’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용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관대함,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이해야말로 우정을 만들고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일 것이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친구의 문제를 풀어주려고 한 용기있고 지혜로운 안나, 다카코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준 이해심 많은 미와코, 거칠고 무심한 듯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결을 지닌 도오루, 도오루를 이해하고 늘 함께하는 시노부. 누구나 꿈꾸는 멋진 우정의 본질을 여기 청춘의 주인공들이 잘 보여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사소한 배려와 이해 속에 깊어가는 우정, 10대 시절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멋진 작품이다. 정말로 스물 네 시간 동안 그저 걷기만 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이렇게 온 가슴을 적실 줄 누가 알았으랴. 이런 성장소설을 만나는 독자는 참 행복하다.

 


정봉남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주인 되는 영토를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오래 걸었습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의 꿈속에 고래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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