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원망스러운 하나님
 

 #81 동진은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약간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씻으려고 막 화장실 문을 여는데, 아내가 등 뒤에서 맥 빠진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저, 오늘 병원에 갔다 왔어요.” 초췌해진 아내의 얼굴에는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병원에서 뭐라고 그러든가?” 동진은 멋쩍게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았다.

 “유방암 이래요.” 힘없이 대답을 마친 아내는 곰팡이가 피어있는 음습한 거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동진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민망한 동진은 집을 나와 힘들고 외로울 때면 찾아갔던 섬진강으로 달려갔다.

 섬진강은 비갠 뒤라서 그런지 유난히 맑다. 동진은 멍하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아! 흐르는 강물이여! 강물이여!’ 하면서 끓임 없이 흘려가고 밀려드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인생이 이렇게 허망할 줄이야! 아이들 학비가 없어 이웃집에 빌리려 다니면서도, 양식이 떨어져도 아무 원망 없이 그저 이 못난 나의 건강을 기도 해주던 아내가 죽을병이라니! 병이 들면 죄 많은 내가 들어야지 왜? 이건 아니야. 그러니 당신이 그토록 믿는 하나님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거야. 정말로 하나님이 전지전능 하신다면 그토록 착한 당신을 왜 병들게 하냐고? 하나님! 할 말이 있으면 한번 응답해보세요!’

 동진은 세상 모든 일이 다 허망하기 느껴졌다. 그 좋아하던 음악을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가치를 향해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떼려고 하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지….

 어둠이 내리자 동진은 하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은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동진은 담담한 마음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보! 미안해. 가정에 대한 나의 무신경이 당신에게 병으로 나타났나 보오. 하지만 이제부터 최선을 다해 치료해봅시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큰 눈만 껌벅거린다.

 

 #82 동진이 아내의 항암 치료는 1년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오가며 아내는 힘든 투병생활을 잘도 이겨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의사가 말했다. “폐까지 암 세포가 퍼져 있어서 완치가 힘들겠어요.” 그토록 심한 고통을 이겨내고 이제 한숨 돌리는가 했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의사와 상담을 마치고 나오자 아내는 순한 눈망울로 쳐다보며 마치 `당신과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내 병이 고치기 힘들어도 나는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반드시 살려주실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동진은 이런 아내의 표정을 읽으면서 묻지도 않는 아내에게 “곧 나을 거라는군” 했다.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하나님이라는 든든한 의지할 자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주 휴게소에서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고 나서 동진은 담당의사가 아내 몰래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동진은 가슴이 미어져 더는 아내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돗자리를 주섬주섬 챙기며 아내를 재촉했다. 음성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차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있었다. 할 말이 많이 있는데, 꼭 해야 할 말들이 있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그 상황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어이, 당신 좋아하는 윤연선의 `얼굴’이나 한번 불러 볼랑가?” 동진의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아내는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본다.

 너무나 할 말이 많아서 목이 메어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린 아내를 바라보는 동진의 마음은 찢어질듯 아팠다.

 아내는 동진의 마음을 훤히 읽고 있었다. `그래요 나 당신의 마음을 알아요. 그러나 그렇게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당신처럼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또 사랑했으니 전 행복했어요.’ 아내는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창문을 조금 열더니 “바람이 시원하네요”,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옛날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거기까지, 그 다음은 내가 불러 볼게” 동진도 옛날을 떠올리며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2절 시작은 다시 당신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 갔던 오색 빛 하늘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날 ~

 아내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부르지 못했다.

 글=민판기 삽화=정승욱


 민판기 님은 마을 공동체의 힘으로 세상을 바닥까지 환하게 비추려는 사람이다. 주민자치의 숨결 속에서 삶의 내밀한 의미를 건져낸다. 송화마을에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문화난장을 열고, 송화공부방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키운다. 뒤틀린 세상에 던지는 그의 질문은 늘 삶의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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