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동 연가] <41회> 돈! 돈! 돈!!!
 

 #90 정사를 끝낸 동진은 다시605호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비방을 한 탓인지 불같은 끝 발이 섰다. 쓰리고를 세 번씩이나 통과해 동진의 앞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여갔다. 동기가 입맛을 다시며 “그것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구만”하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바닥 돈이 동진에게 쌓이기 시작하자 모두들 집중적인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동진이가 잘 나가려하면 가차 없이 희방이가 필영이를 의도적으로 밀어준다. 자기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방편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름이라지만 최소한의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데 너무나 치졸하게 하는 행위는 눈뜨고는 차마 보지 못할 만큼 역겨웠다. 동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패를 나누면 패를 펴보지도 않고 고를 외쳤다. 노름이란 원래 패가 잘 들어와야 승산이 있는데, 보지도 않고 게임을 하다 보니 수북이 쌓였던 돈은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이른바 이들의 심리전에 말려든 것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면서 얼굴표정 역시 기복이 없어야 한다. 도대체 상대방이 무슨 패를 들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가 나지 않아야 한다. 그저 먹이를 앞에 놓고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는 냉혈동물처럼 표정이 없어야 한다. 이런 정글에 법칙을 모르는 동진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게임에 들어가면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일희일비한다. 그래서 상대방은 동진의 표정만 보아도 동진이 손에든 화투짝이 무엇이지를 간파해 버린다. 그러니 언제나 게임이 끝나고 일어설 때 결과는 늘 빈손에 빚만 짊어지게 된다.

 “어~이 종철이, 지금 몇 시인가?” “지금요 에 또, 오후3신데요.” “어 그래? 내가 서울에서 내려오신 중요한 손님하고 4시에 약속이 있어서 잠깐 갔다 와야 쓰것는디…” 동기가 “아따 자네 속보이는 소리 좀 하지마소. 한두 번이라야지. 자네 그런 수법 이제는 길가는 개새끼도 다 알어. 이 사람아!” “아니 뭔 소리를 그렇게 헝가? 약속이 있으니께 그러지” 그러자 동기가 손에 들고 있던 화투짝을 방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정말 더러워서 못해 먹겠구만. 어제 게임 시작 전에 뭐라고 약속 했는가? 2박 3일이 되든 4박5일이 되든 두 사람이 바닥이 나야 게임은 종료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약속이 있었으면 애시 당초 시작을 말았어야지. 어~이 종철이, 자네가 말해보소.” 종철이가 머리를 긁적인다. 일순 좋았던 방안의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절대로 못가! 갈려거든 딴 돈 다 내놓고 가! 누굴 호구로 아나?” 동기가 제갈량 눈썹을 실룩인다. “뭔 소리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소. 난 가야해. 만나고 올 텐께 기다려.” 필영이도 물러서지 않는다. “야, 이 개새끼야! 니가 온다고 해놓고서 언제 한번이나 와봤어? 가면 함흥차사였잖아! 절대로 못가!” “뭐여? 너 말이면 다 하는 줄 알어? 이 새끼가 되질라고 환장했냐?” 필영이가 동기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댄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니 맘대로 해봐 새끼야!” 동기도 지지 않고  필영이 멱살을 잡는다. 이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던 동진은 가만히 방문을 열고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원한 바람이 동진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동진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깊게 빨아들여 폐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후~우” 다시 뿜어낸 담배연기 색깔이 노랗다. 동진은 고개를 들어 새벽별을 보았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별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다보았다. `미친 놈, 미친놈! 적당히 미친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미친놈! 전투를 하면서 얼마나 간교하고 사악했던가?’ 동기가 많은 점수가 나려고 하면 필영이를 밀어주고 그러다가도 지신이 불리해지면 주저하지 않고 필영이를 배신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이 노름은 철저히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돈이라는 매개를 이용해 상대에 따라 현실에 따라 적도 동지도 없는 더럽고 치졸한 전투다. 전투중이나 후에는 얻어지는 건 비굴이고 협잡이고 미움뿐이다. 사람이 이렇게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치사해져도 아무 일 없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돈의 노예가 되고 만다. 돈을 따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저지른다. 어떻게 하든 돈을 따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게임을 하는 동진은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에이 못난 사람 이런 더러운 늪에서 언제까지 허우적거릴지….

 동진은 담배를 피우면서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글귀가 떠올렸다. `한낮 종이조각에 불과한 돈! 그것은 먹을 수도 없다. 거기에 올라앉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다. 비가 올 때도 비를 막아주지도 못한다. 하지만 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중요한 것으로 집단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지금 세상에서는 돈이 있으면 못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돈은 저주로 바뀔 잠재력을 항상 품고 있다.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고 늘 있는 사회 문제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너무 많이 가진 자와 너무 적게 가진 자 사이의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금처럼 돈의 유혹에 빠지면 그 `순수한 수단’을 얻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점이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이란 `하는 것’이지 `갖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은 아내가 됐든 누가됐든 상관이 없다. 다만 그 대상은 `행위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허기이다. 돈과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오는 허기이다. 돈 이나 사랑이나 영원히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데서 오는 허기이다.’


글=민판기, 삽화=정승욱


 민판기 님은 마을 공동체의 힘으로 세상을 바닥까지 환하게 비추려는 사람이다. 주민자치의 숨결 속에서 삶의 내밀한 의미를 건져낸다. 송화마을에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문화난장을 열고, 송화공부방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키운다. 뒤틀린 세상에 던지는 그의 질문은 늘 삶의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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