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비우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

 #95 발아래 사직동 산동네에서는 굴뚝에 연기가 하늘을 향해 쉼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동진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인간들이 밀어내는 대로 아궁이를 지나 굴뚝을 타고 올라가는 연기들을 보고 `왜 사느냐?’고 물었던 답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인간들의 삶이란 오케스트라와 헤비메탈의 만남이야. 이들의 만남 속에서 서로가 어우러지면 물과 물이 합하듯이 서로가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거야. 이들이 잘 조합해서 거대한 물결로 나간다면 미래는 우리 같은 비주류들이 가슴을 펴고 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사회적 관심이 물질에만 매몰되는 촌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니 아주 단편적인 이미지에 그 전체가 채색되고 부분을 확대하는 춘화적(春畵的)발상이 지배하는 오늘의 문화는 개인의 감성을 가장 상위에 두는 문화와의 만남이 쉽게 어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고추와 우리 엄니는 아주 자연스럽게 조응하는데 헤비메탈과 오케스트라는 왜 서로 협연하기가 힘들지? 그 깊이는 알지 못하지만 음악이라는 장르는 확실히 같은데 자기만의 자존감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감각적 욕망 때문일까? 저 하늘을 오르는 연기는 자기를 태워 인간들의 먹는 것을 해결하고는 다시 가라는 곳도 알려주지 않아도 그대로 순응하며 가고 있는데 정작 인간들은 서로를 질시하며 미워하며 합하지 못하는지 어려워도 너무나 어려워서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동진이 긴 시간 동안 왜? 사느냐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연기들에게 답을 구하고자 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가을의 햇볕만이 깐깐한 살기를 뿌려대고 있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남광주역을 향해 걷는 동진에게 반갑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96 “어이 동진이 아닌가? 참 오랜만이시.” 갈색 중절모자를 눌러쓴 손 벽초 선생님이다. 동진도 얼른 선생님 손을 잡는다. “아이고 선생님, 건강 하시지요?” 동진은 청년시절 세상이 싫어 숨을 곳을 찾아들어간 광주향교에서 `사서삼경’을 가르쳐주신 손 선생님을 가슴 깊은 곳에 깊게 묻어두고 살았다. 또 삶의 고비가 닥칠 때마다 손 선생님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해답을 주셨다. 그러나 고향 보성 노동면에 낙향해 계신 뒤로는 자연스레 만남이 멀어졌다. “선생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동진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선생님 손을 놓고는 “선생님,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이나 하시죠.” 하면서 순철이네 장어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선생님은 동진이 따라준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는 동진이 팔각정에서 답을 구하지 못하고 내려온 것을 알기라도 하신 듯 묻지도 않는 말을 꺼내신다. “어떻게 사는가? 요즘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순전히 돈 싸움을 하고 있더구만,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하면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네. 그 행복을 길게 누리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 아닌가? 시대가 이러니까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광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인륜이 말살되고 물질이 우선시 되는 이 시대에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동양 고전을 탐독하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선생님 말씀이 백번 옳지요. 하지만 저는 많은 돈을 벌려고 생각해보지도 않고 살아왔어요. 최소한의 생활 그것만 채워지면 원이 없겠어요. 그런데 세상은 그것도 허용을 하지 않네요.” 동진의 힘없는 말소리에는 거칠기만 한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한 황망함이 묻어 있었다. 그의 뇌리 속에는 팔각정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오케스트라와 헤비메탈은 왜 서로 결합하지 못하는가? 라는 해답을 찾고 있었다. 손 선생님은 동진의 말을 듣고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는 잘 구워진 장어를 입안에 몰아넣고는 동진을 향해 “식기 전에 어서 먹게” 하시면서 누릇누릇한 장어접시를 동진의 앞에 밀어 놓았다. 동진은 음식을 먹을 때는 함께 먹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던지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장어가 담긴 접시를 깨끗이 비운 선생님은 “오늘 얻어먹은 밥값은 해야겄네” 하시면서 벽암록 이야기를 동진에게 들려준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날씨가 나쁘다고 하고, 비가 그치면 날씨가 좋다고 하네. 또 계속해서 해만 쪼이면 가뭄이 들었다고 하고, 비가 많이 내리면 홍수라고 소란을 피우지. 그러나 우주의 본체에서 보면 소나기도, 태풍도, 홍수도, 가뭄도 모두 자연일 뿐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다네. 이런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날마다가 `참 좋은 날’이 된다네.” 동진은 선생님의 강독을 듣고는 오케스트라와 헤비메탈이 만나지 못하는 답을 얻었다. 그래! 맞아! 욕망이야! 서로 간에 욕망을 버리지 못하니까 만나지 못하는 거야. 고급과 하급이 서로를 배려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야. 욕망의 크기가 클수록 삶이 힘이 드는 거야,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치우면서 마음에 찌꺼기들은 왜 그렇게 무겁게 짊어지고 갈려고 하는지 몰라. 그러니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을 원망하고, 그 원망이 쌓여서 병이 되는 거야. 그냥 비우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거야.

  글=민판기 삽화=정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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