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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000년 ‘기억, 책임, 미래 재단’ 설립
이국언
기사 게재일 : 2012-10-08 06:00:00
▲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공식 방문한 서독 빌리브란트 수상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항거하다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바르샤바 게토 희생자 추념비 앞 젖은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다.

 1970년 12월7일, 폴란드에 있는 유대인 집단 수용소였던 나치 희생자 기념관 앞에서 벌어진 일에 세계인들은 자기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독일 총리로는 처음으로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브란트 서독 수상이 무명용사의 앞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은 것이다. 비가 오는 가운데 바닥이 이미 흥건히 젖어 있는 상황이었다. 애초 계획에 없었던 수상의 뜻하지 않은 돌발 상황에 수행했던 보좌관은 물론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진기자까지 당황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이 상황은 진정될 수 있었다. 무릎을 꿇은 빌리브란트의 눈에서는 한동안 말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전 세계를 충격과 감동에 빠뜨리는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이었다.

 이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TV 생중계로 이 장면을 지켜본 폴란드는 전 국민이 눈물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일본정부의 망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차 세계대전에서 같은 전범국 위치에 있었던 독일의 진정한 자기반성 노력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자발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제노역자 등 나치 정권의 피해자들이 1998년경부터 미국에서 미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독일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자, 독일 산업계는 장기간 지속될 소송 사건이 독일 회사에 미칠 치명적 타격을 우려해 결국 독일 수상에게 정치적 보호와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기금 조성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산업계는 2000년 7월 소송 중단에 대한 법적 보장을 전제로 독일 정부와 재단 설립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게 됐다.

 정부와 기업은 각각 절반씩 100억 마르크(약 7조8000억 원)을 모아 ‘기억, 책임 및 미래 재단’을 설립, 나치 정권에 의해 피해를 입은 강제노동 피해자들에 대해 지원을 실시했다. 지원에 대한 법적 권리가 존재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인도적인 성격이었다.

 이때 기금 출연에 참여한 기업수는 6544개로, 주목할 점은 그 중 약 40%는 나치 정권 붕괴 이후 설립된 기업이었다는 사실이다.

 재단은 2001년 6월15일부터 폴란드, 오스트리아, 러시아, 체코 등 98개국에 거주하고 있는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시작, 2007년 6월까지 166만5000여 명에게 총 44억5000만 유로(6조7000억 원)를 지급했다. 한국 돈으로 1인당 약 400만 원씩이다.

 대상자는 독일연방법에 규정된 집단수용소, 오스트리아 영토 밖에 위치한 수용소와 이와 유사한 ‘게토’(ghetto·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강제노역을 한 사람들이다. 또 인종박해 과정에서 독일기업의 직접적 관여 하에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도 포함됐다. 지원금은 노역자 개인에게 지급됐으나 당사자가 1999년 2월15일 사망한 이후에는 배우자 또는 유자녀가 수령했다.

 각별한 것은 피해자들의 실질적 보상을 위해 최대한의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일의회는 2000년 7월 4일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 설립 결의문을 통해 나치시대 노예 및 강제 노동자들을 고용한 적이 있는 기업들이나 그 기업의 법적 상속자들은 그 해당 기업의 문서고를 모두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 희생자들의 보상 청구권을 증명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라는 것.

 아울러 독일연방정부가 조직적, 재정적, 혹은 인적인 조치를 추가로 강구하여 아롤젠(Arolson)에 있는 국제검색 문서고의 기능을 강화해 각 희생자들과 협력단체가 보상여부를 쉽게 확인할수 있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재단은 보상을 완료한 이후 기금의 7%인 3억5000만 유로(5400억원)를 남겨 그 운용수익으로 20여 개에 달하는 지원사업과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위한 인권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강제 노역자 및 기타 나치정권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한 젊은 세대와의 만남 기회, 역사 및 인권, 인도적 사업과 관련한 국제협력 등인데, 젊은 세대가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갖도록 돕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과거사 정리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2차 대전 당시 최대 규모의 강제노동과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됐던 독일 부켄발트 수용소, 시체 소각장, 해부 테이블 등이 고스란히 보존돼 역사 교육 현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낱낱이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사와 대면하는 고단한 노력 없이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일 ‘기억, 책임, 미래재단’ 마르틴 잘름 이사장의 말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국장>

 이국언님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8년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이 최종 패소하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뒤늦게 권리회복 투쟁에 뛰어들었다. 208일간의 1인 시위, 10만 서명운동, 일본 원정 투쟁, 10만 희망릴레이 등을 통해 2010년 해방 65년 만에 미쓰비시중공업을 협상장으로 끌어내 기대를 모았지만 지난 7월 최종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다. 062-36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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