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동연가 제50회<끝>

 #104 ‘저 인간이 결국은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구나!’ 무대에 오른 그 사나이는 동진이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사람! 만나려 했으면 조금만 수소문해 보면 알 수도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떠나버린 사람을 수소문까지 해서 만난다는 건 수희의 자존심이 허락 하지 않았다. 동진과 헤어진 후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내들은 셀 수도 없었지만 하나같이 누렇고 나약한 잡것들이었다. 하이에나처럼 수희 곁을 맴돌며 어슬렁거리는 잡것들이 치근댈수록 수희는 속이 메스꺼웠다. 삶의 희망이 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엄마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수희의 마음은 나약해 질대로 나약해져 뿌리도 없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어두움의 질곡에서 등불 같은 동진을 본 것이다.

 동진의 얼굴은 세상을 달관한 듯 평온해보였다. 눈망울은 진실한 고독을 잔득 머금고 있었다. 또 빛바랜 야전잠바 속으로는 싱싱하게 파닥거리는 진한 야성이 웅크리고 있었다. “으~ 으” 동진을 바라보던 수희의 마음은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괴로운 기다림의 속앓이가 한없이 분출되었다. “개새끼.” 지성이 겸비된 야생마! 동진은 굳게 닫혀있던 수희에 마음을 단 번에 열어버렸다. 닫으려 발버둥 쳐보지만 그럴수록 그 개새끼는 더 깊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으~ 으으으 저 개새끼가…’ 아무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털어내려고 하면 더욱더 바닥 모를 깊이에 이르러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상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자기 혼자 별 상상을 다한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애타게 그리던 사람을 다시 만났다. 이제 더 이상 고독하게 살지 않겠다. 그래도 저 개새끼가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훌쩍 철새처럼 떠나 버리면 어쩌지?’ 수희의 손바닥은 긴장의 땀으로 끈적거렸다. `우연성과 필연성이 잘 조합을 해야 이뤄진다는데 우연성은 맞는 것 같다. 그래! 그러면 이것을 필연성으로 만들어 가면 돼! 용기를 내자! 자존심 따위는 가을바람에 날려버리고. 그 알량한 자존심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 그 딴것 바람이 실어가지 않으면 저 계곡에 흐르는 물속으로라도 던져버려야지.’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이뤄져. 난 이제 더 이상 사랑 때문에 아프고 싶지 않아. 마음이 아픈 것은 다 주지 않으면서 받으려하는 욕심 때문이야. 사랑은 계산하는 게 아니야. 주변을 의식해서도 안 돼. 오직 사랑만을 위하여 살아가면 되는 거야. 이제 저 사람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수희는 벅찬 감동과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장작 타는 소리가 `타닥’하고 들렸다. 수희는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타오르는 장작더미를 바라보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하늘로 올라간다. 사람들은 타오르는 불길에 쓰레기도 갖다가 태운다. 불길은 더러운 오물들을 단숨에 태워버린다. 그리고는 더 큰 불기둥을 일으킨다. 수희는 생각했다. `욕망의 크기가 클수록 삶이 힘들어졌다. 버릴 줄 알아야해. 생활하면서 육신의 쓰레기는 잘도 버리면서 그동안 나는 왜 마음속의 쓰레기를 짊어지고 끙끙 앓으면서 가려고 했을까?’ 수희는 그의 곁으로 가기 전에 마음속에 박혀있는 욕망의 쓰레기들을 다 버리고 가리라고 다짐했다. 다시 찾아온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다시 도망가지 못하게 헌신적으로 동진의 마음을 보듬자.

 키보드를 두드리며 동진이 노래를 부른다. 약간의 저음 속에 애수가 짙게 묻어있는 동진의 목소리는 달빛 고운 산사의 밤을 더욱 분위기 있게 만들었다. `별 가진 것 없어도 노래가 있으면 행복할거야.’ <얼마나 먼 길을 지나야/ 아이들은 어른이 될까/ 얼마나 먼 바다 길을 지나야/ 하얀 비둘기는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대포알을 날라야/ 전쟁이 종식될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저 산이 마르고 바다가 될까/ 또 사람들은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이내 친구야 묻지를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노래한다.

 맞다. 밥 딜런처럼 동진이도 1%에 속하는 사람이다. 밥 딜런이 99%의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면 동진이 역시 노래를 통해서 세상을 바꿔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도 그는 `불로동 연가’를 부르고 있다. 그는 그의 노래처럼 그런 세상을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인생이 뭔지도 몰랐어/ 사랑이 뭔지도 몰랐어/ 흐느끼는 오르간 소리에/ 취해서취해서 살았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한 잔 술에 껄껄껄 웃으며/ 회포를 풀곤 했지/ 친구야~ 친구야/ 그렇게 울지 마라/ 세상 온갖 고통/ 오선위에 날려 버려/ 그렇게 그렇게/ 우리 노래하자/ 친구야/ 나 가거든/ 나를 추억해다오/ 음악에 취하다 간/ 이 얼간이를…> 

 글=민판기 삽화=정승욱

 그 동안 50회를 써오면서 아픔도 많았습니다. 어줍잖은 글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재충전하여 다시 만날 것을 약속드리면서, 송화촌에서 불초 민판기 드림.


 민판기 님은 마을 공동체의 힘으로 세상을 바닥까지 환하게 비추려는 사람이다. 주민자치의 숨결 속에서 삶의 내밀한 의미를 건져낸다. 송화마을에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문화난장을 열고, 송화공부방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키운다. 뒤틀린 세상에 던지는 그의 질문은 늘 삶의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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