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독단전행(獨斷專行) 혼자의 판단으로 멋대로 함

 - 폐하,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아오고 있사옵니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고, 살기 좋은 내 마을은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 하옵니다.

 - 고무신으로 엿 바꿔먹는 시대도 아닌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방금 그것은 (박)정희 폐하의 ‘새마을 노래’인데 아직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대단히 영리한 놈이구나.

 - 제가 쫌, 영리하긴 하죠. 사람으로 태어나 겪을 수 없는 절망이나 폭력·슬픔·사고를 겪고 나서 남게 되는 장애를 ‘트라우마’라고 하지요. 우리나라 백성들은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 박정희의 5·16 쿠데타와 18년간의 폭정, 전두환의 5·18과 삼청교육대, 그리고 납치, 구금, 고문, 사법살인 같은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사옵니다. 트라우마는 생각과 행동을 위축시키고 이상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답니다. 제가 뭘 외우는 것은 영리하다기보다 사육되었다고 볼 수 있죠. 국가폭력의 트라우마 현상.

 - 맞아. 그렇게 가둬놓고 길러야 말을 잘 듣는데 짐은 고작해야 불만 끄고 말았구나. 광장의 촛불을 끄고, 용산의 신나 불을 끄고, 쌍용 노동자의 화를 끄고, 끄고 다니려니 물이 필요했지. 그래서 4대강을 막았어. 그것이 ‘녹색성장’인데 그걸 가지고 난리야. 그런데 갑자기 왜 새마을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냐?

 - 미쿡의 <타임>에 ‘스트롱맨스 도터(Strongman's Daughter)’란 이름으로 그네옹주께서 납시었습니다. 이는 미쿡이 그네옹주를 떠받들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이니 서둘러서 1960-70년대로 돌아가야 우리가 평안할 것이옵니다.

 - 짐도 <타임>을 일부러 들고 다닌 적이 있었지, 읽지는 못 했지만. 먹물들의 상징인 <타임>에 그네옹주가 표지모델이 되었단 말이냐? 그것도 ‘권력자의 딸’이라고? 짐이 권력을 쥐고 있는데, 그러면 그네옹주가 짐의 딸이라고? 가만 있자,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짐과 관계가 없으니 그렇다면 발가락 다이아가? 어서 빨리 황후를 불러 들여라.

 - 아니, 그것이 황후를 부를 일은 아니옵고. 폐하께서는 이미 권력에서…. <타임>에서는 북한의 김정일도 ‘스트롱맨’이라고 적었으니 아마 ‘독재자’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폐하께서는 전혀 독재자가 아니오니, 황후를 의심하지 마옵소서. 그보다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어야 하옵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셔야 하옵니다.

 -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골목길에 시멘트를 깐 것이 ‘새마을운동’이다. 외국 빚을 마구 끌어들여 재벌과 중간관리인들의 배를 채운 것이 ‘경제개발’이다. 가난한 농촌의 백성들이 도시로 내몰리어 막노동판으로 밀려난 것이 ‘한강의 기적’이다. 천국에서나 쓰는 멋진 이름에 백성들은 홀딱 넘어갔어. 피땀 흘린 백성들은 뻔하게 살고, 배 채운 재벌들은 번듯하게 살지. 언론으로 끊임없이 천국의 노래를 가르쳐야 해. 가르치니까 지금도 백성들은 그렇게 믿고 있잖아. 천국의 멋진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욕설이 되어버리지. 오죽하면 신하가 지금까지 새마을노래를 흥얼거릴까, 노랫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구나.

 - ‘국민교육헌장’도 외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하하하, 저 똑똑하죠?

 - 네가 무슨 ‘귀순 북한군’이냐? 똑똑하게. 참, 전방부대에 알림판은 붙였느냐? ‘이곳은 사병들이 생활하는 곳이니 귀순을 원하는 북한 병사께서는 번거로우시더라도 행정실을 들러 똑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친절한 안내문으로 북한군도 가르쳐야 하느니라.

 - 북한의 로켓발사는 몰라도 되니까 꼭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불법사찰단을 보내어 붙였는지 알아보고, 붙이지 않았으면 불법사찰단 뒤에 있는 ‘해바라기 검찰’을 시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낙하산 법무부장관’으로 하여금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담화문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제야 알아서 척척 하는구나. 짐의 뜻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백성이 아니라 적이고 빨갱이다. 짐의 권위에 도전하면 짐의 신하라도 불법사찰을 하고, 백성의 대표라도 두들겨 패야 한다. 모두 (박)정희 폐하와 (전)두환 폐하께 배웠느니라. 그러니 이제라도 ‘스트롱맨의 딸’인 그네옹주 어록을 받들어 ‘지하경제’를 ‘활성화’시키도록 하여야겠구나. 다카키 마사오(정희)의 친딸이고 두환에게 6억 원을 받았으니 그녀의 말 속에는 분명 뭔가가 들어 있을 것이다.

 - 그것보다도 급한 것은 셀 수없는 다카키 마사오의 업적을 얼른 따라야 하는 것이옵니다.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여 일본군장교가 되고, 일제가 망하자 잽싸게 광복군으로 갔다가 국군장교가 되었다가, 남로당에 가입해 국가전복을 꾀하다가 들통 나자 포섭공작에 술 몇 잔 얻어먹은 것이라고 했다가, 정말 국가를 전복한 쿠데타를 일으켰고,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떠벌이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정부에 싫은 소리를 하는 백성은 붙잡아다 고문하고…. 괜찮지 않습니까?

 - 권력을 잡으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데, 조금밖에 못해서 아쉽다. 그래도 문화계에서 훌륭한 사람들을 기리어 영화를 만들었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박)정희의 <유신의 추억>, (전)두환의 <26년>, 그리고 짐이 나오는 <엠비의 추억>. 영화인들의 마음이 갸륵하다. 어서어서 <타임>에도 로비를 하여서 짐도 표지모델이 되고 싶다. 아카데미상(오스카상)은 받아야지 않겠느냐?

 - 걱정하지 마옵소서. 벤츠를 받은 여검사도 청탁이 아니라 ‘사랑의 정표’라고 했으니, 아카데미상 심사위원들에게 ‘사랑의 정표’로 벤츠를 보낼까 하옵니다.

 - 그나저나 걱정이다. 백성들이 알라딘의 램프를 문질러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를 부르듯 손전화기만 문지르고 있구나. 적과 빨갱이는 빼고 백성만 투표를 하도록 불법사찰을 시켜라. 하지만 신데렐라 마차가 12시 넘으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호박 몇 덩이만 남는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여라.

 김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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