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피해’ 68년 만에 명예 졸업장

▲ 김재림 할머니(1930년생·광주시 북구 양산동).
 19일(화), 김재림 할머니(1930년생·광주시 북구 양산동)는 평생에 다시 없을 특별한 ‘외출’을 한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온 지 68년 만에 어린 손주 나이의 후배들과 함께 모교 졸업식장에 다시 서기 때문이다. 화순 능주초등학교(교장 박종기)는 오는 19일 ‘제100회 졸업식’을 맞아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재림 할머니에 대해 졸업장을 재발급해 수여할 예정이다.

 김 할머니의 조각난 기억은 일제의 폭압이 극에 달하던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 화순의 어머니 품에서 떠나 당시 광주의 한 친척 집에 기숙하며 가사 일을 돕고 있던 김 할머니는 그해 5월경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할 수 있다”는 친척 언니의 말에 속에 무작정 일본행에 나섰다.

 그러나 “같이 가자”는 언니의 말과 달리, 정작 일본으로 떠나기로 한 날이 되자 집결지인 광주역에 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일본에 끌려가서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는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어린 나이에 허기에 치친 몸으로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 뿐이 아니었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일본군 위안부 아니었느냐”는 편견과 오인 속에 그동안 남모를 정신적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일제강점기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광복 후에는 주변의 편견 등을 거치며 남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에게 지난 시절은 ‘조각난 삶’, ‘조각난 기억’밖에는 없었다.

 김 할머니가 조각난 어린 시절 기억을 다시 꿰맞추기 위해 나선 것은 지난달 11일. 초등학교 졸업에 대한 기억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 오던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사실 확인 차 김 할머니와 함께 모교인 능주초등학교를 방문한 것.

 결국 이날 문서고에 있는 일제시대 학적부를 뒤지다 1944년 3월, 31회 졸업생 명단에서 창씨개명 된 김 할머니의 이름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역사의 격랑의 과정을 거쳐 오느라 조각난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능주초등학교는 특히 올해 ‘100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뜻 깊은 해를 맞아, 오는 19일 100회 졸업식(오전 10시)에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재발급해 수여함으로써 할머니의 고단한 삶에 위로와 용기를 전하기로 했다.

 졸업장을 다시 받게 된 김 할머니는 “고향 역을 지나갈 때, 어머니한테 말씀도 제대로 못 드리고 속아서 간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며 “오늘 같이 기쁜 날이 없다. 해방 68년 만에 졸업식에 다시 선다고 하니 새 신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고 말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제강점기 학교 재학 중 어린 나이에 일제에 강제동원 돼 학기를 마치지 못한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해 명예회복을 추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나주초등학교는 6학년 재학 중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 된 양금덕 할머니 등 2명에 대해 명예 졸업장을 수여한 바 있으며, 같은 해 순천남초등학교는 일본 군수업체 (주)후지코시 강재공업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김정주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재발급해 위로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졸업식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김희용·김선호 공동대표를 비롯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등도 동행할 예정이다.

 문의: 062-365-0815(시민모임), 010-9268-6750(안영숙 사무차장).

이국언<근로정신대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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