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낮춰달라” 벌거벗은 여인

▲ John Collier, `Lady Godiva’ 142.4×183cm, 1898.
 가수 김원중 씨가 기획하는 빵 만드는 공연이 매달 네 번째 주 월요일 저녁에 빛고을문화관에서 개최된다. 음악만 있는 공연이 아니라 문학과 미술까지 참여하는 복합적인 공연이다. 이 공연의 수익금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빵을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매달 하는 공연이지만 공연제목은 언제나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이다. 공연의 주제는 매달 다른데, 이번 달의 주제는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이다.

 

김원중의 빵 만드드는 공연과 공동체 정신

 

 ‘레이디 고다이버’는 11세기 경 유래된 잉글랜드 코벤트리(Coventry) 지방의 전설이다. 레이디 고다이버는 원래 앵글로색슨족 출신의 귀족이었으며, 그 지역의 영주 레오프릭(Leofric)의 부인이었으며, 젊고 아름다웠으며 신앙심과 애민정신 또한 높은 것으로 전설은 전한다. 그녀의 남편인 레오프릭 영주가 자기 통치 지역의 농노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물리고, 같은 앵글로색슨족 농노들의 탄원이 빗발치자, 레이디 고다이버는 자신의 남편에게 세금을 낮춰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부인의 요청을 비웃고 거절하던 남편은 설마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부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부인의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레이디 고다이버는 고민 끝에 남편의 제안을 수락하고, 이 소식은 코벤트리 전 지역에 퍼지게 된다. 코벤트리의 지역민들은 이 소식을 기뻐함과 동시에, 그녀의 높은 뜻을 존중하여 거사가 행해지는 날에는 지역민 어느 누구도 바깥에 나가지 않음은 물론이고 바깥을 내다보지 않기로 약속한다. 공동체를 위한 레이디 고다이버의 결정이었고, 지역의 공동체는 또 다른 공동체적 윤리의식으로 그녀에게 보답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탄 채 코벤트리를 돌았고,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에 놀라고 감동받은 남편은 세금을 경감하여 평화로운 지역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옛날이야기이다.

 

 관음증 극복한 공동체적 윤리

 

 이 전설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이 전설에서 재미있는 단어가 만들어진다. 벌거벗은 레이디 고다이버가 마을을 돌 때 마을 공동체의 약속을 깨고 양복재단사 톰(Tom)이 창문 틈으로 그녀를 엿보다가(peeping) 그만 천벌을 받아 눈이 멀었다고 한다. 그래서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몰래 엿보는 관음증적 사람을 영어로는 Peeping Tom이라고 한다.

 전설이란 것이 역사상 있었던 어떤 일에서 시작하여 말 그대로 ‘전설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민중들의 바람이 들어있다. 실제로 영국 잉글랜드의 중부지역에 위치한 코벤트리는 해마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고다이버 축제를 개최하고, 이 도시의 대성당 앞에는 말을 탄 고다이버 동상이 서있다. 벨기에의 유명 초콜렛 회사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초콜렛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당연히 영국 미술가들이 이 좋은 소재를 놓칠 리 없다. 여성의 전신상이나 인물을 주로 그렸던 존 콜리에(1850-1934)라는 영국 화가는 미술사조상으로는 당대 뛰어난 초상화가 중의 한 사람이어서 토마스 헉슬리나 찰스 다윈 같은 유명인의 초상을 그리기도 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야기에서 가져온 소재들을 그의 작품에 끌어다 쓰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뱀이 이브의 다리를 휘감고 있는 모습을 그린 ‘릴리스’(Lilith, 1892)와 이번에 소개하는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 1898)이다. 레이디 고다이버를 소재로 그린 그림은 여럿 있지만, 그 중 이 작품이 제일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된다. 간결하고 고전적인 구도, 그녀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가슴을 가린 손과 가녀린 몸, 말을 덮고 있는 붉은 천은 그녀의 고귀한 신분과 희생정신을 상징한다.

 

 북녘 어린이 돌보는 빵공연에 감사

 

 영국은 역사적으로 공동체정신을 중요시하는 나라였다. 경제적인 의미에만 공동체정신이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예의에 있어서 공동체정신이 더 중요한 것이다. 영국에서 유독 예의범절이 강조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영국도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공동체정신이 붕괴되고 오로지 경쟁뿐인 사회가 되고 있는데 대한 고민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 비하면 영국은 그야말로 양반인 것 같다. 영국은 레이디 고다이버로 상징되는 지배자의 자기희생을 기리기라도 하지 않는가.

 암울하기만 한 이 시대에,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가난한 북한 어린이까지 생각하는 김원중 씨의 마음이 고맙다. 김원중 씨의 빵 만드는 공연이 한국의 고다이버 축제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광주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정신을 기릴 수 있는 전설이 될 것으로 믿는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