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피서법 세 가지

▲ 전영근 작 `여행-언덕을 지나며’, 162×112cm, oil on canvas, 2012.
 피서의 계절을 맞아, 광주문화재단에서 옛 선비들의 피서법을 재현하는 문화행사를 개최한다고 한다.

 ‘선비들의 여름나기’라는 제목도 좋고, 광주관광의 핵심코스여야 할 가사문화권을 살리려는 노력으로 생각되어 흥미롭기도 하다. 옛날 행사를 재연하는 것이라 좀 어색하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재미와 의미가 있는 행사라고 생각한다. 올해가 벌써 3회째인데 올해는 환벽당 정자 아래에서 재연행사를 한다고 한다.

 사실 여기는 가사 문학과 정자 문화로 한국 최고의 관광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유홍준 씨가 썼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되었던 이유로 해서 소쇄원만 유명하지만, 정자 건축 보다는 가사 문학과 선비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재조명한다면 관광지가 부족한 광주에서 너무나 좋은 관광루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옛 선비들의 피서법



 이 행사의 모티브가 되었던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柳濯熱圖)’는 조선 중기 학자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의 시문집 `서하당유고’에 나오는 그림이다. “성산계류(식영정과 환벽당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에서 열을 씻는 그림”이란 뜻이다. 선비들이 정자와 물가에 앉아 더위를 피하는 모습을 간략히 담았다.

 김성원은 광주에서 나고 자란 분으로, 창평의 성산에 서하당(棲霞堂)과 식영정(息影亭)을 짓고 이이, 기대승, 고경명, 정철 등과 교류하였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고에는 송강 정철의 국문가사인 `성산별곡(星山別曲)’이 있고, 그가 직접 지은 한시인`애식영정고송(哀息影亭古松)’도 있어, 지금의 담양과 광주에 속하는 가사문학권에서 교류하였던 선비들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들은 송강 정철(1536~1593)만 알지만, 정철은 김성원보다 나이도 9세가 어렸고, 김성원은 정철의 스승 격이었다. 창평도 그의 나이 15세 무렵에 부친의 유배가 풀리자 이주하게 되어, 27세에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여 년간을 생활하면서 학문을 익힌 곳이다. 지금으로 치면 정철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창평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성산별곡이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면 서하당, 식영정, 환벽당, 그리고 성산별곡의 의미가 더 각별해진다.

 정철의 성산별곡은 출세한 정철이 정쟁으로 정계를 물러나 창평에서 은거할 때, 당시 문인 김성원이 세운 서하당, 식영정을 중심으로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경치와 김성원의 풍류를 예찬한 국문가사이다. 전체는 6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첫 번째 단은 주인 김성원의 풍류와 기상, 식영정의 자연경관을 노래하였고, 2단(봄)은 성산의 봄경치와 주인공의 생활을 그렸고, 3단(여름)은 신선하고 한가한 성산의 여름풍경을, 4단(가을)은 가을 달밤 풍경을, 5단(겨울)은 겨울경치와 이곳에 은거하는 주인의 부귀를 노래하였고, 6단(마무리)은 산중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이 작품은 보편성이 희박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오히려 개인적이라 그 당시 선비들의 진솔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시대상이 어지러워 김성원과 정철의 풍류는 오래가지 못했다. 김성원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72세의 나이로 부부가 함께 왜군에게 죽음을 당하였고, 정철은 평생을 공부와 관직, 유배, 복권을 반복하였고, 마지막에는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도에서 은거하다가 58세에 쓸쓸이 숨을 거두었다.

 그분들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 이 여름에 피서할 방법을 생각하는 내가 한없이 작아지긴 하지만, 그분들도 한창때는 직접 한 여름 선비들이 피서하는 법을 기록한 바 있다는데 용기를 얻어본다.

 

 21세기 우리들의 피서법



 사실 피서에 대해서는 옛그림에 남겨진 기록이 별로 없다. 하긴 현대그림도 피서에 관한 그림은 별로 없긴 하다. 인생에 있어 놀이와 여가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매난국죽만 그리던 옛날에 누가 선비가 놀던 모습을 그렸겠는가. 선비의 높은 이상만 표현하던 문인화, 화원들의 국가행사 기록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풍속화가 주종이다 보니 정작 선비들이 노는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다.

 추측해보면 조선시대 지배계급이던 선비들의 노는 모습을 기록할 용기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시종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고매한 모습이 대부분인데, 특이하게 신윤복의 `선유도(船遊圖)’는 선상 물놀이에 나선 부유층 양반들의 부적절한 놀이문화를 기록하고 있다. 요즈음으로 치면 여친들과 호화요트 타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이것도 정확히 피서라고는 할 수 없다.

 어느덧 7월 중순이다. 7월에는 소서(7일), 초복(13일), 대서(23일), 중복(23일)이 있어서 바야흐로 한여름의 뜨거움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보통 우리들이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1)냉면, 수박 같은 차가운 음식을 먹거나, 2)집에서 혼자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있거나, 3)물가(바다, 계곡, 수영장)로 놀러가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보통사람들의 피서법은 이 세 가지가 거의 대부분 아닐까?

 선비들의 피서법? 가부장제가 있던 유교문화에서는 경제력(지역 유지였으니까)과 함께 시중드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통할 수 있었겠지만, 요즘은 당치도 않다. 보통의 아버지들은 가족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하여 오늘날 선비들의 피서법은 재연행사에만 나오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피서를 안 할 수는 없는 법!

 선비를 꿈꾸었던, 그러나 지금은 일상에 지친 아버지들을 위해 21세기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전영근 작가의 `여행-언덕을 지나며’라는 작품이다. 옛날에야 갈 곳이 계곡 밖에 없었을 것이고, 요즘에는 자동차가 있으니 가족끼리 어디든지 피서를 갈 수 있다. 하얀 파도가 넘실대고, 수평선이 바라다 보이는 산길을 조그만 승용차에 부푼 희망을 태우고 올라가고 있다. 저 산만 넘으면 푸른 바다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피서라고 가는 바닷가는 결코 시원하지 않다. 오히려 뜨거운 고생길이다. 그러나 올해도, 기억력이 나쁜 우리는 푸른 바다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신난다. 피서는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일상을 피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모쪼록 더운 여름날, 환벽당에서 발을 담그거나, 아니면 피서계획을 짜면서 더위를 피해보시기를!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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