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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속세상]고야의 ‘사투르누스’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과 광기
1808년 스페인 침략한 프랑스의 잔혹한 살육
변길현
기사 게재일 : 2013-08-12 06:00:00
▲ 프란시스코 고야 , 사투르누스, 146×83cm, 캔버스에 유채, 1820~1824 경.
 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극히 제한적이다. 어디까지가 아시아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의 문화교류가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위주였던 까닭이 제일 크다. 지리상으로 한국과 반대편인 미국의 문화는 속속들이 잘 알면서도 말이다.

 아시아는 여러 인종이 함께하는 지구 최대의 대륙이다.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햄(팔레스타인), 마호메드가 태어난 메카(사우디아라비아), 석가모니가 태어난 카필라성(인도), 공자가 태어난 산둥성(중국) 등 세계를 지배한 종교와 사상이 모두 아시아에서 나왔으며, 인류의 4대문명 중 이집트를 제외하고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허문명이 모두 아시아에서 나왔다.

 하지만 불행히도 세계지도가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강대국의 해외침략으로 재편되면서 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20세기 전반기 두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아시아는 그야말로 전쟁과 내전, 분단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 돼버렸다.

 동아시아에 위치한 한국은 허리가 분질러진 분단국이 되어 지금은 일본의 오분의 일보다도 작은 섬나라가 되어버렸고, 안타깝지만 한국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는 수구기득권세력의 이익에 가로막혀 있다. 북한은 독재자의 아들이 권력을 계승하고, 일본은 침략세력의 손자가 권력을 계승하고 있다. 한국은 권력기관의 선거개입 문제로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역사적 상황을 맞고 있고, ‘역사는 반복되는가라’는 안타까운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의 화약고, 서아시아

 

 그러나 20세기, 그리고 지금 21세기에서 가장 안타까운 지역은 세계의 화약고라는 오명이 붙은 서아시아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만들었던 이 위대한 지역은 지리적으로 서양과 동양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침략의 대상지였다. 가장 왼쪽부터 터키,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는 이란, 쿠웨이트, 오만, 아프가니스탄 등이 있다. 이 지역이 세계의 화약고가 된 이유는 종교, 석유, 독재, 강대국의 침략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영국은 유럽에서 미움 받던 유대인들을 쫓아내기 위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지중해 동쪽에 젖과 꿀이 흐르던 땅을 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석유는 이들에게 막대한 부도 안겨주었지만, 석유를 노린 강대국의 침략으로 이들은 영원한 침탈과 고난, 내전의 역사를 맞이한다.

 미국이 행한 이라크 침공은 베트남전쟁처럼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침략 그 자체였다. 미국은 오로지 석유와 패권을 위해 이라크를 상대로 살육을 자행했다. 대량살상무기와 후세인의 독재는 핑계였을 뿐이다. 항거할 능력이 없는 이라크를 상대로 미국은 대규모 살상을 자행했다. 미국이 쓴 비용이 3284조 원이라는데, 미국은 참 멍청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돈의 절반만 써도 이라크를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이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고로 지적능력과 도덕성이 낮은 대통령인 부시의 전쟁게임 중독 때문이라는 설명이 차라리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 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내부의 문제이다. 아직도 독재가 행해지고,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은 이 지역의 불안한 정세는 서아시아 지역을 낙후시킨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왕이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사우디,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은 왕이 군주로서 군림한다. 2011년 1월 아랍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재스민 혁명으로 시작한 ‘아랍의 봄’은 주변 왕정국이나 독재국가를 긴장시키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동시에 정권쟁탈을 위한 내전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지중해와 이라크 사이에 있는 시리아는 아랍의 봄으로 인한 민주화시위가 내전으로 연결된 사례이다. 학생들의 평범한 민주화시위가 발포로 이어졌고, 이에 반정부군이 생기고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은 초기에 반정부군을 지원하였으나, 주변나라들의 종파간 이해관계, 그리고 반정부군의 비인도적 학살행위 등이 더해져 더 복잡해졌다. 현재 2년간 10만 명이 내전으로 사망하였고, 정부군, 반정부군 모두 화학무기 사용, 강간, 학살 등의 전쟁범죄로 이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가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인육까지 먹어가며 복수를 다짐하는 상황이다. 이성이 마비되고 짐승보다 더한 광기와 복수, 증오만이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다. 같은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권력 물려주기 싫어 자식을 잡아먹다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당대에 권세를 누린 사람이었지만, 근대미술의 문을 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고전적인 모범으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개인의 이성이나 화가로서의 자의식이 들어간 근대적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보통 당대에 권세를 누리면 밝고 희망차고 교과서적인 그림을 그리게 마련인데, 고야는 특이하게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 물론 그는 화가로서 돈을 벌기 위해 궁전, 성당, 대저택을 장식하는 프레스코화나, 왕가나 귀족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대표작들은 인간을 괴물로 묘사한 작품들이다. 그의 유명한 판화집 ‘전쟁의 참화’는 1808년부터 1814년까지 프랑스가 스페인을 침략하여 광기에 찬 살육을 벌인 참상을 묘사한 것이다. 팔과 다리, 머리가 잘려나간 잔인하고 초현실적인 그림들은 차마 공개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 서아시아의 상황은 고야의 ‘전쟁의 참화’와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1820년경 마드리드 교외의 시골집 벽에 그린 ‘검은 회화’시리즈는 그의 예술에 대한 근본적 태도를 알 수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그린 검은 회화 시리즈는 광기에 찬 인간 군중들의 모습을 어둡게 그리고 있어, 예술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사투르누스’는 이 검은 회화 시리즈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극적인 작품이다. 당초 이 집의 벽에 그렸던 작품을 나중에 뜯어서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어서 자식을 잡아먹는 로마 신화의 농경신 사투르누스. 인간의 욕망, 광기, 타락, 폭력, 갈등, 어리석음에 대해 이것보다 간결하게 묘사한 작품도 드물다.

 인간의 광기와 욕망을 확인하는 것은 슬프다. 서아시아가 아직도 왕위를 세습하는 비민주주의 국가라고 비웃을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가? 오늘날 합리적인 이성과 비판의식을 잃고 아시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적 광기와 폭력성, 그리고 역사의 퇴행과 반복은 우리에게 깨어있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근대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말로가 말한 바대로 “고야는 가장 극단적인 정신적 탐색”이었고, 이 말은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유효한 것 같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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