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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속세상]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무수히 많은 점으로 채운 작품
김환기만의 `청색’ 고스란히
변길현
기사 게재일 : 2013-10-07 06:00:00
▲ 김환기, 12-Ⅸ-72_244, 1972, 코튼에 유채, 264×208cm, 삼성미술관 소장.
 올해가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라 서울의 환기미술관에 이어 광주시립미술관에서도 100주년 기념 ‘김환기 탄생 100주년’전을 개최하여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김환기(1913-1974)는 한국에서 일반인들이 문화와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힘들던 시기에 활동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그는 한국의 서정미를 추상회화로 완성시킨 선구적 대가이다.

 그림이란 점수로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다양한 기호로 저마다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한국의 서정미를 추상미술로 완성한 작가로는 김환기를 제일 우선 꼽아야 할 것 같다.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이 있어 그의 작품과 그의 인생을 볼 수 있지만, 그의 업적에 비해 그에 대한 합당한 평가가 아직은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환기는 1913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1927년 서울 중동중학을 거쳐, 1931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3년 일본대학 미술부에 입학하여 회화수업을 받았다. 1937년에 귀국하였고, 서울대학교 미대 교수(1948-50),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 및 학장(1952-55, 1959-63), 1954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예술원 회원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서울대와 홍대 교수, 예술원 회원이라는 현실적 지위는 그의 예술적 이상을 충족시킬 수 없을 만큼 작업을 향한 그의 꿈은 컸던 것 같다. 그는 1956년부터 3년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작업에만 매진하였고, 귀국 후 홍대 미대 학장을 하였으나, 다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작업에만 매진하다가 1973년 타향에서 작고하였다. 향년 61세. 아까운 나이였다.

 

 탄생 100주년 기념전 출품작

 오늘 소개할 그림은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하였던 작품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이다. 그림에 대한 그의 생각의 원천, 그리고 그의 작품의 완성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그의 고향에서 바라본 한국의 하늘, 한국의 바다는 그가 청색을 즐겨 사용하였던 이유였다. 화면을 무수히 많은 점으로 채운 이 작품은 김환기만의 청색, 독창성과 더불어 한국인의 서정적 아름다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작은 점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우주와도 같은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 많은 제자들, 후배들이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김환기와 비슷한 여정을 걸었고, 한국 출신으로 세계미술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활동을 했거나 하고 있는 작가로 우선 백남준(1932-2006)과 이우환(1936~ )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무 살 무렵 일본으로 유학하여 그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철저하게 세계인으로 살았다는데 있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제시대에 경기중과 홍콩을 거쳐 1951년 일본의 동경제국대학(현재의 토쿄대학)에 입학하였고, 1956년 졸업 후 독일로 건너가 오늘날의 백남준을 이루게 된 플럭서스 활동을 하였다. 이어 1964년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미술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엘리트로 살았을 그가 만약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자유로움, 그의 천재성이 그를 세계인으로 살게 하였다.

 이우환은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 미대를 중퇴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하여 현재까지 일본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1961년 일본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평론가와 미술작가로 활동하였고, 1960년대 말의 일본의 미술유파인 모노파(物派, 돌, 철판과 같은 물건(物件)을 있는 그대로 사용한 일본식 설치작품) 운동의 이론형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 1973년부터 2007년까지 동경 다마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점과 선을 이용한 추상회화로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김환기 위한 미술관이 있으면

 김환기는 백남준보다도, 이우환보다도 앞서서 시대를 산 사람이었다. 1913년에 태어난 그가 20여년 후에 태어난 제자나 후배들보다 세상을 향한 눈을 열고,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술창작에 매진하였다는 것이 놀랍다. 1973년 그가 작고하기 1년 전에 쓴 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보라.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경기도 용인에는 경기문화재단이 운영중인 백남준미술관이 있고, 현재 대구에서는 ‘이우환과 친구들’이란 미술관을, 부산에서는 부산시립미술관 내에 이우환갤러리를 건립 중이다. 서울에 사설미술관으로 환기미술관이 있지만, 안정적 운영을 위하여 한국현대미술의 스승이자 시대를 선도한 화가였던 김환기를 기리기 위한 공립미술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의 유고집 제목처럼 그를 더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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