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맞서는 인간의 울림

▲ 구본주의 `갑오농민전쟁’, 1994, 브론즈, 120x290x275cm (실외작품), <사진=성곡미술관 제공>
 인간이란 구제불능인 것인가? 조선시대 지배시스템의 무능과 탄압, 착취에 들고 일어난 동학혁명(1894)이 외세와 야합한 당시 지배계급에게 멸살당한 것이 불과 100여 년 전이다. 당시 무능한 지배계급은 애꿎은 같은 민족에겐 가혹하고 외세에겐 유약했다. 동학혁명과 갑신정변 등이 발단이 되어 우리 땅에서 남의 나라 전쟁(청일전쟁 1894~1895)이 벌어지고, 청나라가 패배하여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일본은 랴오둥반도, 타이완, 펑후섬 등을 할양받았다. 이로부터 조선은 사실상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일본에게 먹혀버린 신세가 되었고, 15년 후인 1910년 조선은 패망하고 만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

 동학혁명 당시 농민들을 죽인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패망할 때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모두 나라보다 자신의 기득권과 안위가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기득권과 지배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서로 청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여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는 일본에게 나라를 바친 사람들이었다.

 당시의 국제적 분위기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무력이 세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수탈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제사회에서 약육강식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것이 인간사회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이 그저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 괴롭기만 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은 짐승보다 나은 것인가? 2013년도 대한민국의 국사편찬위원장이란 분은 제주4·3사건의 무자비한 진압을 통해 무고한 제주도민 3만여 명을 학살한 이승만을 민족의 영웅이라 칭송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을 짐승과 같은 저열한 상태로 본 이승만을 이토 히로부미와 동급에 놓기도 했다. 1936년 일제시대에 태어난 이 자는 짐승과 같은 저열한 상태의 한국인이었다가 이제 이승만의 감화로 인간이 된 것인가? 그런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이 자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의 불의는 무엇인가? 이승만과 그 일당을 말한다. 그런데 이 자의 주전공이 이승만 찬양이다. 지은 책이라곤 온통 이승만 뿐이다. 헌법을 부정하는 자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자이고, 그런 자를 대한민국 공직에 앉히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자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인 세상이다. 더군다나 이 자의 잘난 아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여 병역을 면제받은 후 한국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높은 지위를 가질수록, 세금에서 나오는 월급을 받을수록, 국가와 민족을 생각할 수는 없는가? 그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자기 아들은 병역을 면제받고 미국인인 사람이 어떻게 한국의 국사편찬위원장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자를 생각할 때 인간이 금수보다 못하다는 말이 경우에 따라 옳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진화시킨 사람들

 이런 금수만도 못한, 나라의 이익보다 자기의 이익이 우선인 인간들도 있지만, 동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같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에서는 이런 이들의 힘이 부족하지만 역사를 진화시킨 것은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이름 없는 농민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희생자들 덕분이었다. 죽어서 부관참시까지 당하고 살아서 능욕을 당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지금 이만큼의 민주주의라도 있는 것은 모두 그분들의 덕분이었다. 자리 욕심, 권력 욕심을 내지 않고 자기의 자리에서 평범하게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움 덕분이었다.

 전봉준은 부친 전창혁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항의하다가 오히려 곤장을 맞고 죽임을 당하자, 비분강개하여 농민운동을 일으켰으나 마침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1895년 교수형에 처해진다. 불과 41세였다. 그가 옥중에서 남긴 시가 전해진다.

 <때가오니 천하가 모두 힘을 같이 했건만 /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일 뿐 내 잘못은 없으니 / 나라를 위하는 붉은 마음 그 누가 알리.>

 전봉준의 마음을 기리어 전봉준이 죽은 후 100여 년 후에 서울의 한 조각가가 동학농민군 조각상을 제작했다. 상징적이고 투쟁적으로 제작된 이 작품의 위대한 점은 마음이 담겨져 있어서이다.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었으되 불의에 맞서는 인간의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조각가는 로봇같은 단순한 기능인으로 살지 않고 세상을 고민하고 사랑했던 조각가였다. 그의 이름은 구본주. 구본주는 1980년대 말 한국에서 만난 일반인들과 노동자들의 삶의 풍경을 진솔하게 빚어낸 조각가였다. 장식으로서의 조각이 아니라 정신으로서의 조각을 주조했던 조각가. 사람냄새가 그윽한 조각을 했던 사람. 서른일곱 짧은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작업을 하였고 누구보다 독보적인 자신만의 조각세계를 구축했던 조각가. 영원한 파랑새라 불리는 구본주가 남긴 역사적인 작품이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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