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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완 세상산책]<36>전라도 가시내
광주가 외치면 대한민국이 울렸건만
지금 ‘광주정신’의 정체성 온전한가?
이병완
기사 게재일 : 2013-10-30 06:00:00
▲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전라도 가시내’라는 시가 있다.

 월북시인 이용악의 작품이다. 일제 식민지시절 만주의 간도까지 흘러 온 전라도의 어느 바닷가 출신 술집아가씨를 통해 조국을 잃고 유랑하던 한민족의 애상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구절이 있다.

 

 차알싹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듯 울듯 울지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 아닌 봄을 불러 줄게

 손때 수줍은 분홍댕기 휘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리라

 

 시는 읽는 사람과 읽는 시점에 따라 오늘을 해석하고 비유하는 상념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전라도 가시내’를 읽으며 오늘의 전라도와 광주를 생각해본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이후 전라도민들, 특히 광주시민들의 심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쩐지 ‘울듯 울듯 울지않는 전라도 가시내의 그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든다.

 지난 대선을 전후에 우리사회의 일각에 머물던 ‘그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유신잔재세력의 커밍아웃 분출

 그들은 전라도 사람들을 빨갱이나 좌빨이라 매도하고, 종북이라 소리소리 질러댔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다르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시각이 다르고, 우리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정치적 선택이 다르다는 한 가지 이유였다. 다름을 틀림이라고 억압하고, 지역주의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독재시대의 유물이었다.

 그러나 철지난 일부 극우세력의 놀이터 인줄 알았던 인터넷과 SNS 일각의 배후에 국가정보기관이 개입됐음이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방송에서 대한민국이 명명한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간첩들이 침투한 폭동으로 날조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마침내는 전경련 회장과 서강대 총장을 지낸 이가 “서민들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 차라리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부르짖는다”고 부르짖었다. 그러면서 ‘5·16과 유신을 폄훼하는 무지한 인간들의 생떼와는 상관없이 조국 근대화의 길로 매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권의 등장과 함께 권력을 향한 유신잔재세력의 커밍아웃이 시작된 셈이다.

 국립현충원에 울려퍼진 그들의 목소리가 ‘전라디언들아, 홍어들아, 무지한 인간들아’라는 소리로 들리는 것은 정녕 환청인가.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울듯 울듯 울지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현실을 은유해보면 ‘전라도 가시내’는 오늘의 광주시민이고 전라도민일지 모른다.

 

 무슨 영화 바랐나? ‘못된’ 정권 바꿀 신념 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요즘 말로 돌직구를 던져보자. 언제까지 정권타령만 할 것인가. 광주의 꿈이 기실 정권교체였던가.

 후보가 미거해서, 전략이 미진해서, ‘쪽수(인구)’가 딸려서… 따위의 뒤풀이는 그만 접자.

 ‘양자’가 그만하면 부족할 것 없었다. ‘사위’도 그 정도면 탓 할 일 아니었다. 제자식들은 못난이로 키워놓고 언제까지 양자와 사위 타령 할 것인가.

 모두들 알고 있다.

 돈벼락이 떨어질 것이라고 정권교체를 열망하지 않았다. 권력의 뒷줄을 탐해서 대통령선거에 올인하지 않았다. 올바른 대한민국, 제대로 된 민주주의, 평화로운 한반도의 길을 가기 위해선 ‘못된 정권’을 바꾸어야 한다고 믿었다. 신념이었고, 진정이었고, 열정이 있었다.

 대한민국 그 어느 지역보다 조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고장이 광주이고 전라도 임을 자부하고 있다.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위해 희생했던 전라도의 역사가 새겨진 이 땅의 DNA임을 어찌하랴.

 멀리는 정도전의 혁명을 각성시킨 고장이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이순신과 수많은 의병장이 웅거한 임란 최후의 보루였다. 정약용의 학문과 애민 경세를 발효시킨 본향이었다. 외세에 맞선 동학농민전쟁의 발원이고 격전지였다. 가까이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고교생 4·19 의거, 5·18 민주화운동, 두 차례의 민주정권을 창출 해냈다.

 광주는 자기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의를 향해 외쳤고 행동했다. 어느 한 시절도 기득권을 탐한적도 누린적도 없었다. 그래서 시대는 광주를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라 부르고 그것을 ‘광주정신’이라 이름 지었다. 그래서 광주가 외치면 대한민국이 공명했다. 시대적 대의와 도덕성, 정체성이 있었다.

 

 지방 정치는 진흙탕, 행정은 비리·사기…

 그런데 지금 과연 ‘광주’는 존재하는가. 광주정신의 대의와 도덕성, 정체성은 온전한가.

 광주에 ‘광주’가 사라지고 있다. 민주광주에 민주가 없고, 담론 광주에 언로가 사라지고, 문화광주에 창조적 예술혼도 퇴색되고 있다. 어느사이 숨막히는 지방도시로 전락해가고 있다.

 십 수 년 기득권 정치의 지붕아래 독점정치권력과 일방행정의 독선이 개망초처럼 번졌다.

 총선과정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하고, 시장경선과정이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했던 정치적 사건에다 총인시설 입찰비리사건, 갬코사기사건, 국무총리 사인도용사건 등 크고 작은 공직사건들이 광주의 대의와 도덕성·정체성에 먹칠하고 있다.

 전국 광역도시 중 가장 많은 언론매체가 있는 광주지만 시민들은 이런 저런 구린내 풍기는 사건의 내막들을 소문과 유언으로 듣고있다.

 한 조그만 타블로이드 신문의 해학적 칼럼 하나가 유일한 광주의 언로 숨통이라는 어느 언론학자의 전언은 표현과 언론의 자유, 소통과 투명이라는 민주광주의 희극적 역설이다.

 한때 대한민국 시대담론의 진원지였던 시민사회도 독점권력에 편입되거나 기득권의 위세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어른들이 물러난 자리엔 이해득실에 연연하는 정치권의 촉수가 더듬고 있다.

 문화수도에서 문화예술행정이 방치되고 예술혼 마저 행정의 규율아래 놓인다는 비판이 제기 되고있다.

 광주정신을 기억하는, 무등산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깨어있는 시민들은 이런 광주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고소한 미소를 머금고 광주를 바라볼 세력들은 누구인가.

 일자리, 민생, 지역경제 중요하다. 그러나 본질적 문제는 광주의 기가 빠지고 퇴색되고 있는 현실이다.

 ‘부자되세요’ 로 당선된 MB 정권에 이은 현 정권에서 시민들이 가슴답답한 우울증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에서 시민들이 느꼈던 민주주의의 호흡은 어떤 의미였던가. 민주 평화 인권의 가치가 실현되던 시기였고 그것이 바로 광주정신이었다.

 

 광주 정치 변해야 대한민국 견인한다

 광주가 먼저 변해야 한국정치가, 한국민주주의가 바뀐다. 광주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해 가야한다. 견제와 균형, 비판과 감시, 투명과 소통을 위한 대안세력을 만들어 가야한다.

 대구와 부산이 할 수 없다. 광주가 나서야 대구도 광주도 견인해 낼 수 있다. 답은 광주정치의 변화와 혁신이다.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퇴적된 기득권은 변화와 혁신,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다. 누적된 기득권은 결코 스스로 변할 수 없었음을 역사가 논증한다. 그들만의 리그가 있을 뿐이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기득권 리그에선 비주류였고 아웃사이더였다. 광주가 비주류의 혁명을 이루어냈다. 광주역사의 주인이 시민이었고 진보하는 대한민국현대사의 동력이었다. 항상 깨어있는 시민이 광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무등산 산자락으로 쪼그라드는 광주정신의 영토를 다시 대한민국으로 넓혀야한다.

 시민이 결심하고 결단하는 날 광주가 변하고, 한국민주주의가 전진하고, 마침내는 ‘양자타령’ ‘사위타령’에서 벗어나는 그날이 올 것이다.

 

 손 때 수줍은 분홍댕기 휘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리라

 

 ‘전라도 가시내’에게 불어 넣었던 시인 이용악의 꿈이 잠깐 광주와 전라도의 꿈인 듯 들려온다.

이병완 <광주 서구의원·노무현재단 이사장·전 노무현대통령 비서실장>



 ※이 글은 29일 열린 전남대 문화센터 특강 자료로, 본보는 필자의 연재물인 세상산책으로 편집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광주시민들이 든 촛불들. 충장로에서 매주 벌어지고 있다.<광주드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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